김세린 칼럼/한국, 세계정치

윤동주 詩人 생체실험 당했다...

월드인기스타 지성인 세린 2013. 5. 22. 02:10

윤동주 詩人 생체실험 당했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저 詩를 내가 처음 대한 것은 열대여섯살 어린 소녀적이다. 저 구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얼마나 가슴에 닿았던지, 시인처럼 나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으리라’ 다짐하였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는 싯구는 또 얼마나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대변했던지... 나 역시도 그 어린 나이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찰랑이는 물살에도,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애잔하였고, 소녀의 나이에 나도 석가모니처럼 인간의 ‘생노병사’에 고뇌하여 병자나 노인들을 지나치거나 죽음의 행렬들을 보면 그 얼마나 가슴이 사무치게 아팠던가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석가모니처럼 인간의 생노병사를 괴로워 출가 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지, 마음은 진정 ‘잎새에 이는 조그만 바람 한조각에도 괴로워하였다’. 이후 어른이 되어 어릴 때 결심했던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지는 못했지만 '거의' 부끄럼없이는 살았으니... 그 시구는 아마도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게 어느덧 지배해 온 경구였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청년 시인 윤동주를 좋아하였다.

 

 

2년전부터 나는 마치 여류시인이라도 된 냥 시를 쓰기 시작했으므로 요즘은 그동안 거의 대하지 못했던 한국시들을 '생전 처음인 듯' 읽고 있다, 그러다 약 2주전 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오랜만에 문학비평가 김우종교수의 글을 대하게 되었는데, “한국사회에 문학이 미친 순기능과 역기능”이란 제하의 논문에 ‘윤동주 서정주 그리고 임화’를 다루고 있길래 나는 얼른 읽어 보았다 (이 논문이 언제 어디에 발표되었었는지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논문의 내용으로 보건대 2000년 서정주 사후, 2009년 전후가 아닌가 한다), 김우종 교수는 광복 전야인 1945년 2월에 운동주가 옥사하였는데, 그것이 생체실험때문이고, 죽은 후에 시신을 빨리 인수해 가지고 가지 않으면 쿠슈대학의 연구용으로 쓰인다는 협박편지가 고향에 당도하여 부친과 당숙이 급히 달려가서 화장하고 뼛가루를 안고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반 년 앞두고 옥사한 윤동주 시인은 그 때 겨우 스물일곱의 생애를 마쳤다.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감옥에서 이육사 시인이 순국한 지 1년 1개월 만이다. 1945년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던 이는 그의 당숙 윤영춘(가수 윤형주의 부친. 윤형주는 윤동주의 육촌 동생이 된다.). 그는 윤동주와 함께 수감 중이던 동주의 고종사촌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당시 송몽규가 “저 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라고 전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송몽규도 3주 후 옥사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맞았다는 그 의문의 주사를 한 일본인 문학평론가는 ‘그 의문의 주사’는 당시 규슈제국대학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다. 당시 힘겹게 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제는 부족한 수혈용 혈액을 대신할 물질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요코하마 전범 재판 기록을 확인한 결과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제대에서 실시한 미군 대상 생체실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한다. 1945년 5월 추락한 미군 B29 폭격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11명이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이들 중 여섯 명은 산 채로 해부된 뒤 소각되었다. 규슈제대 의학부는 산 사람의 혈액을 뽑아낸 뒤 바닷물을 주입하는 생체실험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 끔찍한 생체실험은 집도 책임자였던 이시야마(石山)라는 의사였는데 그는 종전 뒤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취조 받다가 자살해 버렸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 실험의 전모는 묻혀 버렸다. 이때 기소된 30여 명의 관계자는 교수형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약리학자들에 따르면 인체에 바닷물을 주입할 경우, “바닷물에 포함된 동물성 플랑크톤 등으로 인한 세균 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뇌까지 혈액이 전달되면 혈액이 뇌로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때의 증상이 뇌일혈과 같다.”고 한다. 윤동주의 죽음은 공식적으로는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와 연관지을 수 있겠다.

 

 

윤동주 집안은 1941년말 창씨개명을 하여 성씨를 ‘히라누마’로 하였고, 이에 윤동주는 괴로워 ‘참회록’을 썼다고 전해진다.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2년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조선과 일본)의 차별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있다 한다. 이로써 우리는 윤동주의 투옥이 드높은 민족정신과 “조선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에 기인함을 알게 된다.

 

오늘 여기서 나는 윤동주의 생체실험 내력을 자세히 쓸 수는 없다. 증언과 정황을 살펴보건대 당시 20대 젊은 나이의 평소 건강했던 윤동주의 갑작스런 옥사는 일본의 생체실험의 희생자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나는 이 생생한 생체실험의 현장묘사와 그리고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시인이 그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너무도 놀랐고 슬퍼했다. 여지껏 윤동주는 몸이 약해 옥사한 줄을 알고 있었으니...

 

나는 2011년 4월부터 시를 썼으니 너무 늦은 감이다. 허지만 윤동주는 아주 어렸던 10대초반에 이미 시인의 꿈을 꾼 듯 하다. 윤동주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판된 것은 해방 3년 후, 1948년이다. 31편의 시가 실린 정음사판에 이어 1955년에 10주기에 93편의 작품을 담은 유고시집이 간행되었다. 그는 이미 13세 때부터 송몽규와 함께 등사판 문예지 발행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고 18세 때에 “삶과 죽음” “초 한 대” “내일은 없다”를 발표하며 민족정신이 드러난 시인으로서 연희전문학교에서도 활동을 계속했다. 당시 다른 많은 조선인 문사들이 친일의 글을 쓰고 있을 때 젊은 나이의 윤시인은 저항시를 쓰며 위험을 무릅쓰고 쓰며 출판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실패한다. 출판이 어려워서 윤동주 자필 시집은 한 권인데, 실은 세권이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윤동주 시인이 그 엄혹하던 시절에 저항시를 썼던 그 큰 용기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광수의 예에서 보듯이 한때 절절했던 민족주의자들도 日人들의 총칼앞에서 친일로 돌아섰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시절 저항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의 1970년대 민주화운동보다 비교 않되게 더 위험하고 무서웠던 것이었으리니. 오늘에사 새로이 대하는 윤동주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정신에 깊이 고개 숙이는 바이다.

 

윤동주 시인이 생체실험을 당하였다는 사실에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며칠 후에 나는 現일본 아베총리가 비행기 ‘731’을 탑승하여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사진을 보게 되었고, 당장 윤시인을 떠올렸고, ‘마루타’ 생체실험을 떠올렸고, 해서 슬퍼하고 분노하여 쓴 것이 칼럼 “인류를 우롱하는 일 아베 총리의 731”이다. 큰 호응이 있었다.

 

요새 일본은 우리 한국을 향하여, 북한 핵문제로 인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는 대한민국을 향하여, ‘침략이 아니다’, ‘그들은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들이었다’며, 온갖 망언과 망동을 보란 듯이 해대고 있다. 북한에는 한국과는 한마디 의논도 없이 특사를 보내어 약을 올린다. 이런 일련의 처사들은 일개 7월에 있을 선거운동 때문만은 아니다. 근저에는 한국과 세계를 얕보고 하는 망나니 행동이다. 이에 무라야마 일본 전총리는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들어가면 그건 침략이다’고 일갈하며 아베의 ‘무침략론’을 비난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어제 그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필자는 말하노니, 반총장은 일본을 향해서도 일갈하여야 한다, ‘타국의 ’침략‘을 왜곡하며, 여성 인권 유린을 부정하는 ’야만의‘ 일본을 향해서도 북한과 똑같이 비판 성토하셔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북한의 상시적 미사일 도발, 핵도발, 일본의 망언도발 외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나라안 일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어려운 경제문제, 일자리문제, 온갖 추악한 사회문제들...국민들도 편을 갈라 서로 적대적으로 분열하여 싸우기에 여념이 없다. 격랑의 동북아에 격랑의 국내문제들로 나라가 이리 시끄러우니 ‘대한민국호’는 떠내려갈 판이다. 나라의 정치, 외교는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 단단한 각오로 살아야 할 것이다.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한다.

 

오늘 나는 얼마전 나를 울렸던 생체실험의 희생자가 되었던 윤동주 시인을 아베의 731기에서 상기하며 작금의 나라일까지 더듬거렸다. 우리 한국이야말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똑바르게 정신차려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에게 혹은 이웃나라에게 또 당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