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린 칼럼/한국, 세계정치

박근혜, ‘북핵폐기’의 ‘평화 대통령’이어야 한다

월드인기스타 지성인 세린 2013. 5. 28. 22:29

                                                    박근혜, ‘북핵폐기’의 ‘평화 대통령’이어야 한다

                            

- 中 시진평의 6자 회담 제안에 대하여

 

지난 5월 22일의 북한 최룡해의 중국 시진평 국가주석과의 만남을 전후하여 한국에는 두 개의 ‘대화의제’가 들어 온 상태이다. 하나는 중국이 북의 최특사를 향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권유에 북이 ‘핵관련국과 대화하겠다’는 천명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2000년 김대중과 김정일이 서명한 6·15선언 12주년을 맞이하여 민간이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공동으로 축하행사를 벌이자는 제안이다.

 

중국 시주석은 북한 특사에게 6자회담에 복귀하라 제안하며 “지금 한반도의 대세는 비핵화이다”고 하였다. 그는 이번에 ‘비핵화’를 강조하였다. 이는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지금까지의 ‘對북핵 경고’ 차원에서, ‘북핵 용인 불가’의 천명으로 보이는 듯하여, 우리로서는 조금 고무되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소망’이면서, ‘사실’로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2003년에 시작되어 지난 10여년간의 행적을 더듬을 때, 우리는 6자회담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이것이 북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이 다자회담은 북핵 해결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북한에게는 핵진화와 보유의 꿀같은 시간을 안겨주었고, 중국은 북한을 먹여 살렸으며, 국제무대에서 개최국의 우아한 제스처를 하였다, 오늘날 세계는 중국이 북한 편만 들어준 즉 ‘비정상 악성 국가’를 편든 나라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중국은 ‘핵없는’ 핵을 감축해야 할 세계인들의 정서에 反하는 반국제적인 행동을 결과적으로 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시주석의 북의 6자회담 복귀제의는 북한을 다시 대화와 협상의 자리로 이끌며, 북이 적어도 겉으로는 그에 응답함으로써 한반도의 위기가 조금 누그러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6자회담을 믿고, 美·北이 핵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우리는 그들의 결과를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을 하고, 대책을 세우며 바빠야 할까. 아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지난 10년의 ‘주변부 인생’의 기나긴 잃어버린 세월로도 충분한 허송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정부는 ‘북핵’과 관련하여 주도권을 잡고, ‘반드시 폐기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행동’에 돌입해야 할 것임을 필자는 요망한다.

 

다시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갓 시작하여 남아있는 임기 5년 동안 ‘북핵폐기’를 핵심 목표하여, 결국 성취하여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요컨대 박대통령은 다른 분야보다도 ‘정치’에 집중하는 일테면 막스 베버의 판단력있고 책임있고 열정적인 ‘정치가’여야 한다, ‘제2의 한강의 기적’도 좋다, ‘행복·복지 대한민국’도 좋다. 하지만 이들은 담당부처들에게 맡기며 자주 점검하시되, 대통령은 한반도 ‘핵폐기’라는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생존이 담보된 문제에 집중하여 해결하는 '정치가'가 될 것을 요망한다.

 

‘한반도 북핵폐기’는 한국이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가져오는 근간이 된다. 북핵이 페기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안보을 보위하며 불안이 해소되어 평화를 가져오며, 국민경제와 글로벌 경제는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게 될 것이다. 국민들과 젊은 세대들은 희망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미래의 꿈을 키울 것이다. 박대통령은 그러므로 임기동안 ‘정치’에 전념하시며, 그 때 핵심 책무가 ‘북핵 폐기’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임기내 성공시켜야 한다. 한반도 핵폐기 없이는 한국은 미래가 없다. 한국민은 살아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리며, 그러니 영원히 ‘행복하지 못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은 고사하고 평상적인 경제성장마저도 가로막히게 된다, 이 ‘핵 전쟁’의 불안한 땅에 내국인인들, 외국인인들, 누가 투자하겠는가.

 

中國 시주석의 6자회담 제안을 한국정부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 최룡해가 중국의 권유에 마지못해 ‘대화하겠다’ 라고 하니, 미국측의 반응인, ‘대화보다 핵폐기 의지를 보여 달라’, 한국측의, ‘말보다 행동’이라는 반응은 옳다. 그런데 핵폐기는 그저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므로 중요한 것은 이 지점에서 우리의 행동action이 요구된다. 주변 강대국들과 손에 손을 잡고서 이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 북한도 이 자장안에 들어올 수 있다. 박통은 그때 아리아드네의 실꾸리를 잡듯이, 북핵폐기의 주도권을 잡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차제에 중국의 말대로 6자회담이 개최된다면 우리는 이에 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미, 중, 북을 수시로 양자 혹은 한,미,중 다자로 접촉하여, 북핵폐기의 논의를 거쳐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당면 절대 과제인 ‘북핵폐기’는 우선은 한반도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을 가져 올 것이고 그리고는 평화를 나아가 통일의 문으로 안내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의 박통이 북핵폐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여기엔 필자는 정치 지도자들의 상호간 친분을 들고싶다. 그것은 당사국들의 외교적 관계를 원만하게 진행시키는 컴뮤니케이션의 상승효과를 높히는 유익한 지렛대가 된다. 이를 이미 박대통령은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북한도)의 호감도가 높다고 한다. 성공 외교의 좋은 밑바탕이다. 그러니 호감이 호감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나라에 ‘국익으로’ 이끄는 실질적 성과를 나타내기를 바란다. 박통이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정상간의 소통의 좋은 수단이다. 박통은 소통기구와 교통기관을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날으는 사무실이라도 괜찮다. 중국과 미국의 주석과 대통령들에게 전화하시고. 필요하면 만나야 한다. 북한도 ‘자장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세 나라와는 ‘빅딜’을 마다않는 담판을 벌일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전화와 비행기를 북핵폐기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국가원수는 시진평에게도, 오바마에게도, 된다면 북한의 지도부와도, 국제 사회의 그 누구와도 언제든지 전화 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찾아가서 도움도 협력도 요청해야 한다. 전범 분단 국가였던 독일이 우리보다 앞서 약 25년전에 이미 통일을 성취한 예에서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의미있는’ 행동을 눈여겨 볼 수 있다.

 

1989년 독일의 핼무트 콜 수상이 통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그의 평시의 인간관계 즉 부시 시니어 미국 대통령,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고르바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평소 돈독한 인간관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인간관계를 구축했었는데, 통일이 다가오는 냄새를 맡았을 때, 그는 친분 관계를 잘 활용하였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처음부터 독일 통일에 호의적이었지만, 회의적이던 프랑스와 소련을 독일 편으로 이끄는데 콜수상의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시의적절하게 순작용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콜 수상의 정치적 할아버지뻘 되는 아데나워 수상의 먼 훗날의 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는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 아데나워는 늙은 노구를 움직이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는 독일, 프랑스의 화해를 위하여 전범국가의 멍에를 진 노인 수상의 행적을 살펴보자. 외교와 안보국익을 위하여 80 노인이 행했던 인내와 열정을.

 

1949년 2차 대전후 독일 초대 수상인 콘라드 아데나워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서독이 유럽의 일원(一員)으로, 세계의 충실한 일원으로도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와의 관계개선은 그러므로 유럽과 서방과 세계로 향하는 외교 관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데나워는 프랑스와의 관계개선에 나서며 샤를 드골에게 서독이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명예와 지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프랑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아데나워가 1951년 4월 11일 총리로서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측에선 단 한 명의 장관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은 1871년 비스마르크가, 1940년엔 히틀러에 의해 점령당한 악몽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냉랭한 푸대접을 받았던 아데나워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의 최선을 다했다, 그는 총리 재임 14년 동안 파리를 26번 방문했다. 소련이 아니라 친서방정책을 고수했던 아데나워의 워싱턴 방문은 10회였다. 아데나워는 드골 대통령을 찾아간 이래 열다섯 차례 100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40여 회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며 독, 프의 화해를 위한 숙제를 푸는 일에 매달려 마침내 1963년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독·불(獨佛) 우호조약을 체결한다. 보불전쟁과 1, 2차 세계대전 등 3차례나 프랑스를 침략한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피해국 대통령을 찾아가서 화해를 요청한 결과이다.

 

이처럼 국가 지도자는 국익에 필요하다면,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먼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 국가 간의 화해나 협력은 지도자가 앞장서고 국민이 따르면서 이룩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現한국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는 국민의 복지, 행복에 앞서, 단연 ‘북핵폐기’를 최선두에 두며 대통령이 발벗고 나서기를 제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북핵폐기는 우리 한국만이 발버둥을 친다고 해결이 되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 중국, 미국의 결단이나 각오, 의지, 행동없이는 북핵폐기는 불가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나라들에게 박대통령이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부언하자면, 직접 전화를 하고, 필요하면 찾아가고, 설득하며... 북핵폐기를 위하여 각 나라마다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며...된다면 한·미·중 공조체제를 만들면 효과적일 것이다. 북핵폐기는 한국대통령의 남다른 적극적 행동을 요구한다.

 

오늘 필자는 한반도 핵위기의 이 시점에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진짜 정치인'으로 활약하길 기대하며, ‘북핵폐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맞아, 임기內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하에 모든 知的 정치적 상상력과 물리적 에너지를 쏟을 것을 요망하며, 북핵폐기가 마침내 가져올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박근혜가 ‘평화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박근혜대통령의 정치력은 ‘북핵폐기’에서 그 위상을 드러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