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방담小笑放談

감옥살이 母등을 밟고 올라서다. 탄핵옹녀 罪준석-대의에 울고 소의에 웃다.政母를 쳐서 감옥에 쳐넣는 광란 4년 후에도 弱小 미안·후회는 커녕 “정당하다” 외치면, 타고난 망나니일까요

월드인기스타 지성인 세린 2021. 6. 18. 15:24

감옥살이 등을 밟고 올라서다. 탄핵옹녀 준석-대의에 울고 소의에 웃다. 政母 political mother를 감옥 투척 광란  4년 후에도 弱小 미안·후회는 커녕 “정당하다” 외치면, 타고난 망나니일까요

 

세상엔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의 공감을 얻는 개념이 있다, 가족, 부모, 사랑, 다정, 자유, 평등, 은혜, 효도, 보은 등등, 은혜를 입은 자가 보은은 고사하고 은혜를 정확히 거꾸로 되갚는 치한들을 세상은 망나니라 부른다. 그런 아재가 눈에 띈다.

 

이 분은 키드로 불렸단다. 박이 발탁했단다, 언어풀이로만 따지면, 박통은 이준석의 엄마인 셈이다. 물론 친모니 생모는 아니겠지만 정치적 엄마라는 말이다. 이런 좋은인연을 누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이끌어 준 윗분과 두고두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일생을 함께 하기도 한다. 첫 독일 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가 그렇다.

 

하지만 세상사에 배신은 봄날 벚꽃만큼이나 흐드러졌으니, 아무리 정치적 아버지라도 정치적 자식은 배반을 서슴치 않는다, 현 메르켈 수상은 자신의 정치 아빠인 콜의 비자금을 비판한 댓가로 여론의 인정을 받고, 당수가 되고 나중에는 수상에 오른다.

 

허나 괜찮다. 이 일로 콜수상은 감옥에 가지도 않았고, 통일 후유증과 16년 너무 오래 집권한 콜에 염증이 난 독일 국만들은 사민당에 표를 던졌으니 정권 교체가 왔을 뿐이다. 수년후 메르켈이 수상이 되고 난 후, 한 유명 산문 칼럼을 읽었는데, 메르켈을 왕 살해녀(KingKillerin)”, “마키아벨리스틴(Machiavellistin권모술수녀)”이라는 비난이었다. 칼 같은 법치주의의 나라로 알려진 독일이지만, 독일 사회는 콜 수상의 비자금을 더 이상 캐지 않았고 유야무야 되었고, 감옥에 1초도 갇히는 일은 없었다. 콜은 정계를 은퇴했고 노환으로 별세했고, 독일은 콜에게 공식적으로 통일과 EuropaEuro에 대해서 감사하다며 애도했다. 나라의 지도자를 굳이 을 들추어 감옥에서 잠들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의 지도자를 감옥에 던지는 일은 대외적으로 쪽 팔리는 일인 줄, 후진국다운 일인 줄을, 강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혜망각이나 은혜를 저버린다는 행위는 좋지 않은 행실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 또한 다반사이니 대수롭잖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은혜망각이나 은혜를 저버림을 통해서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면 다른 문제이지 싶다.

 

(주장되듯) 80% 대중들이 나서서 촛불행진하며 밤을 세우며 무섭게 을러대니, 그 세태에 휩쓸려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의 수호를 위해 관용 제로를 외치며,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는데, 그 결과가 자신에게 은혜를 준 자를 감옥에 던지는 일에 크게 동조한 꼴이 되었다면, 그 은혜 준 자가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3년을 넘고 4년을 넘어 20년을 넘게 옥살이 하다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강력 동참했다면, 아무래도 은혜를 받은 자신이 은혜를 준 자에게 일말의 죄지은죄책감 같은 감정이 일어야 정상일 것 같다는 말이다.

 

이준석 아재는 최근 탄핵은 정당하다고 외치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고 입장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왜 홀로 뜬금없이 탄핵 정당론을 고성방가하실까. 어떤 가책을 느낀 것 같애, 5000만 시민이 죽창가 혈맹은 아니더라도 촛불 탄핵 벗들인데. 외롭지 않은데, 5천만이 탄핵에 대하여 대의의 자부심을 느끼는데, 뭐가 두려워서, 이준석은 홀로 탄핵 정당론을 외치실까. 언뜻 괴로운 양심일까. 지속적으로 자신의 죄스런과거를 정당화해야 맘이 조금 편안해 지는... 민주 아재는 늘상 가책을 느끼며 사는걸까..아무도 궁금하지도 않은데 먼저 나서서 탄핵정당론을 외치는데, 유승민 대변인 같애. 사실 유씨는 박을 탄핵할 이유가 있다, 박이 먼저 그에게 배신자프레임을 씌웠으니까, 유씨가 황새라면반탄핵 했겠지만, 뱁새이니, 열심히 5천만과 함께 공감하여 탄핵한거다. 유씨의 탄핵 찬성은 함무라비 법전상 정당한 것, 이에는 이로 갚아준 것 뿐, 그런데 이준석 아재는 탄핵질을 열심 자랑하는데, 역사가 알아줄거니 외칠 필요 없다, 오늘로서 이씨는 그 정당한“ ‘탄핵 옹녀로서 등극한다.

 

이준석의 탄핵 정당론은 우리에가 철지난 사색을 일으킨다. 이건 정오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고, 죄와 무죄(Sculd oder Unschuld)의 문제같다, 전자는 오류와 무오류의 평가의 문제이니 그 구분은 대체로 명약관화할 터, 선악의 판단은 하느님의 영역이 아닐까. 탈진실시대 가치 상대화를 부르짖는 포스트모더나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선악의 판단은 누가’ ‘어떤 관점으로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죄와 무죄는 선하게 살려는 도덕적 마음과 관련 어떤 사안에 대해, 현재의 정오와 선악을 비켜서, 자신이 내린 선택이나 언어나 행동이 후에 초래한 결과에 대해, 모종의 책임감과 도의성을 가늠하는 지경일 것이다,

 

가령 한 남성이 사귀던 여성을 차버리고, 다른 여성과 결혼했는데, 이후 실연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 여성이 자살을 했다고 하자, 남성은 잘못하지도 않았고, 악을 행하지도 않았으나, 어떤 가책의 파동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정당했다고 떠벌이지 않아도, 세상은 그 남성이 오도 죄도 악도 아님을 안다. 아무도 더 이상 그 일에 대하여 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내면은 다른 것이다. 오래 사겼고 사랑했고...자신의 배신으로 인해, 옛여자 친구가 자살을 택했다면...마땅히 죄책감이 밀릴 것이다. 몰래 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책할 수 없다. 욕할 수도 없다. 어떤 죄책감을 느낄만한 일에 스스로 괴로워 하니,,,사람답게 보인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죄인 줄도 모르고, 안들 죄책감을 못느끼고, 후회도 자책도 안하니 연속해서 같은 죄를 함부로 저지른다. 미디어와 매체들의 간접살인 횡포를 보자, 90년대 말부터 수많은 심약한 어린 연예인들을 마구 코너로 몰아부쳐 자살에 이르게 했다. 몇 년 전에는 모씨를 남편과 딸 살해의 패륜 살인녀로 두세달 죽일듯이 몰아붙이더니 경찰이 해명하자, 단 한마디 사과없이 자책없이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선다. 최근 대학생들이 과음하다가 사망사고가 났는데, 마치 배려깊은 엄마인 척, 이모인 척 하며 죽은 학생의 원혼을 달레며 위로하며 친구를 살인용의자로 몰고가며 그 살인자 친구를 잡으라고 닐뛴다. 이들은 무고한 개인을  합리적 의심이랍시고‘ ‘살인자로  대놓고 의심을 한다는 것이 죄인 줄을 모른다. 무죄로서 판명나도 살인자 의심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조차도 느끼지 않는 세상. 이런 죄많은 사회이니, 은혜 받은 자가 은혜 준 자에게 그 흔한 배신좀 했기로서니, 본인은 미안함 따위야 죄책감이야 꿈엔들 있을소냐.

 

위에서 언급했듯, 이준석은 유승민과 처지가 다르다. 유승민은 박을 감옥에 쳐넣는데 앞장 설 이유가 있었던 것, 이준석은 박을 배신할 이유가 없다, 이유란 오직 거창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사의 한 페이지에 거창한 행동으로 몸을 던진 위대한 대의명분. 이준석 아재는 한국 민주화를 위하여 또는 천안함 용사들의 부모 앞에서 진심의 눈물 흘리는 사나이, 大義名分에 운다. 째째하게 자신을 키워준 政母를 위해서는 아니다 말하자면 小義에는 웃음이다.

 

자신을 정치무대로 이끌어 주고 길러준 엄마의 공은 모르고, 그 엄마를 그분” “그분이라 호칭하며 이름조차 거명하기를 꺼린다. 의 실수하나도 무관용이다, 권력탐욕에 촛불행진하는 상대당들과 손에 손잡고 대동합세하여, 그 어미를 감옥에 투척한 세대가 바로 이준석. 탄핵옹녀 준석.

 

이씨는 천안함 장병들 유족에게 가서 울고불고, 정치 지망생의 생쇼는 아니겠으니, 진심으로 열심히 울었다, 한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은혜로운 (박키드라는 말은 이준석의 모가 박이라는 뜻), 감옥에 처넣는데 행동 보수의 선봉에 서서 웃었다. 이준석은 대의에 울고, 소의에 웃는 대장부 답다, 애써 이끌어준 모의 은혜를 모르거나’ ‘망각’, 끝내는 의 시시콜콜 하자같지 않은 하자들도 모두 고발하는 헹위의 선봉에 서서, ‘모친 감옥 투척에 앞장 선 자. 그런 자를 망나니라 부른들 부드런 포용,

 

내리 3선의 절망살이 끝에 36살 젊은이가 1등 야당대표 당선먹었다고 만민이 호들갑이다. 나의 눈에는 너무 늦은 감, 일생에 최고 혈기방장 젊은 나이에 10년도 넘은 백수 아재 인생이었고, 인생에 한번도 (시험) 실패가 없는 사람에게는 한번의 패배도 감당키 어려울텐데 내리 3선 낙선이라는 유별난 기록, 내리 3연패는 죽을 맛일 것 같다. 12년간의 놀라운 패배자 경력. 36살 저 나이면, 보통 청년이라면, 결혼에 아이는 물론 한 살림 이미 이루었을 세월.

 

사실 내리 3연패도 복인지 모른다, 무슨 찬스?를 타고 났길래, 20대 부터, 다른 열혈 정치 지망생들은 공천 한번 받기도 어렵다던데, 내리 3번이나 받았고, ’운좋게공천 당하고 떨어지고 또 공천 당하고 또 미역국 먹고,..그렇게 12년 세월이 필요했던걸까.

 

이무튼 늦게사 아재에겐 좋은 승리가 있었다, 스스로에겐 10년간의 백수생활(?)을 접고 천신만고 끝에. 그렇게 평생토록 즐거울 날에 내놓는 아재의 축사, 들어보니 기쁘고 감사하다, 당대표다운 가벼운 당의 미래 포부 한마디 없이, 오랫동안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부둥켜안고 살았던 설운 사람처럼-사실 12년 걸리는 내리 3연패는 청춘에게 심리적 꼬임을 야기할 정도로 긴 고통의 세월의 질량이긴 하다-원망과 비난, 비판이 역력하다, 굳이 하고 싶다면 비판해야 할 대상은 구태 정치일텐데, 포장마차 안주 수다급 개성이니 다움..’.타령일까. 다움이 그렇게도 힘드시나. 다움은 내부로부터 또는 외부로부터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이거나 자격, 능력등인데 아재는 왜 그에 그리 큰 불평일까. 당대표면 당대표다운 리더의 적임자로서 으레 갖추어야 하는 기본 요건 일텐데..,얼마나 ~다움에 설움이 맺혔으면 생애 처음 크게 승리한 날축사에 불평을 늘어놓는지...

 

이준석 아재는 단어 선택에서 최상극을 취한다, “저열이나 야만” “정치 희화화 ” “선악등등의 표현은 가장 나중에 선택당하는 단어들로써, 아름다운 여성 지식인 김세린으로서는 주저하다가, 오랜 증빙이 쌓여서 할수없이 내키지않게ungern 사용하는 회피하는 단어들을, 이준석 아재는 대표 선거와 당선 후 지금 약 1주일도 안되어서 그 뚫린 구멍()에서 쏟아져 나와 사대문 거리를 지저분하게 헤맨다, 경박하게도 쉽게 뱉는다. 그리고 아재가 너무 거창하다. 역사가 될지 이벤트가 될지 모르는데, 김치국물 역사에 초대한다는 둥,

 

정모를 20년 넘을 감옥에 쳐넣고도, ‘정치적 자식으로서지은 죄를 모르고, 알았더라도 망각하고, 이슬같은 미안함·죄책감 한방울 없으니, 망나니이거나 자신의 말처럼 야만이거나...미학도 인륜도 무너지는 천박·잔혹 세상인 줄을 알고 있지만, 아재 역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오늘 나는 귀한 시간 일부러 만들어 언질할 뿐...

 

이씨는 이 자리에 이름 올렸으니 영광인 줄 알고, 이후로는 김세린의 continent에 들락거리지 마시라,

 

아재의 간판은 그럭저럭?, 배움이 적고, 짧고, 얕아, 부박한 識者 축에라도 못 끼이니(물론 정치인에게서 지식인급 지식과 지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존심을 묻지는 않겠고. 혹여 오랜 세월 후에라도 일말의 죄책감이 일었다면 방문을 할 수 있을까.

(아재와 유승민은 설레소서, 이제부터 대서특필 띄우기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