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린 문학세계

끝내 정직하게 살고팠던 심심했던 여류 소설가

월드인기스타 지성인 세린 2023. 9. 11. 14:51

*끝내 정직하게 살고팠던 심심했던 여류 소설가

 

나는 먼저 수저를 놓고 어머니의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왈칵왈칵 치미는 혐오감을 되새김질했다. 나는 어머니가 싫고 미웠다. 우선 어머니를 이루고 있는 그 부연 회색이 미웠다. 백발에 듬성듬성 검은 머리가 궁상맞게 섞여서 머리도 회색으로 보였고 입은 옷도 늘 찌들은 행주처럼 지쳐 빠진 회색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못해 죽지못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딴딴한 고집.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 가고 있었다, 박완서  나목〉본문 중에서

 

박완서 작가는 김세린을 몇 번 놀라게 하였다. 저 위의 발췌 문장을 2-3년 전에 처음 마주쳤는데 놀랐다, 작가의 엄마에 대한 혐오감을  미운 부분들을 하나하나 주저없이 직설적으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딸로서의 박작가. 이 때 딸은 기타치는 이성에게 호기심과 연정을 품으며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이 오글대는 20대 아가씨.

 

나의 어리둥절은 저 적나라한 혐오 표현의 서술뿐만이 아니라, 과연 박작가는 당신의 엄마를 실은 혐오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고, 그랬다면 그건 진정한 뜻밖이기 때문이다. 세린이 아주 오래전 박작가의 〈엄마의 말뚝〉을 읽었고, 거기에는 전쟁통에 외아들을 잃은 엄마의 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기에, 박작가는 당연히 엄마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딸이었을 것이다고 의례히 믿었었는데, 혹시 박작가는 당신의 저 회색빛 누추한어머니를 실제로는 미워했나? 하는 상념을 일으켰던 것이다. 세린으로서는 자신의 엄마를 혐오하거나 미워하는 딸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모녀가 살다 보면 서로 잘 이해하지는 못할 망정, 엄마가 딸에게 기울이는 마음을 대체로 딸들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에 엄마에게 미운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것이다. 아들들이야 엄마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알다시피 〈나목〉은  박완서 1970 여성지의 ‘여류 장편소설공모에서 당선된 데뷰작이다. 그해 박씨는 40세였으니,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냐?’ 질문들을 던졌는데, 박완서는 이에막내까지 학교를 보내고 나니 심심해서…’라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심심해서라는 박의 대답은 문학이 심심풀이 땅콩이냐하는 힐난이 돌아왔다고 그녀는 여러 언급했다. 결국 박완서의 심심 어린 수다장이 김세린의 귀에까지 전해 들려온 것이다, 늦깎이 작가 박완서의 "심심해서"하는 답변은 청년 김세린의 뇌리에 어느새 녹아 들었다.

 

당시 김세린은 어렸지만 박완서의 심심해서;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공감하고 있었다. 대중들이 이해하듯 심심하릴없이 지루해서라는 뜻이 아니라, 아이 5명을 낳아 키우던 전업 주부로서 눈코들 새 없이 바빴던 그녀가 1953년 결혼 후 약 17년여가 지났던 1970년 무렵 겨우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틈이 생겨났기에 그것을 그냥 "심심해서" 라고 표현했을 뿐, 문학은 그이에게 전혀 심심풀이 땅콩이아니었던 것이고, 그의 늦깎이 문학은 익명의 아줌마에서 개인으로 한 명의 여성으로 시민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심심은 그렇게 박씨가 저편에서 미래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데 꼭 필요한 회랑이었던 것이다.   

      

박씨는 아들을 못(?)낳아서 아들을 얻을 때 까지 낳고 또 낳아서 5명의 대가족 자녀를 두게 되었고, 그렇기에 귀하고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막내 아들막내까지 학교를 보내고 나니비로소 심심해서…’ 늦게사 자신의 세계를 엮어본 것이 소설 쓰기인 것이다, 글쓰기는 박에게 경단녀로서 대학 중퇴자로서 전업주부로서 일생을 끝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열정과 의지로 시작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오랜 유럽 체재로 더구나 대체로 현재와 미래에 열중하는 숩관상  지난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기 일쑤이던 세린 왕녀에게 수 년 전 언젠가, 박완서의 그 멋진 말 심심헤서라는 글귀가 문득 떠올라, 글 어디쯤 심심해서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할 일이 없거나 지루해서라는 뜻이 아니라, 박완서의 그 옛날 심심을 추억하여 재미삼아 한번 사용해 본 것이다. 당시보다 50년이 흘렀건만 오늘날의 대중들도 박완서 시대의 그때 그 단순 대중들과 꼭 마찬가지로 지루한으로 받아 들였다.

 

살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는데, 나는 ‘심심하다; 지루하다; 외롭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또한 할 일이 없던 적이 없다. 얼마나 할 일이 많냐 하면, 서울에서 내가 자주 외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다 업무상 외출시, 가능한한 신속히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 외로워서 여성들은 고양이도 개도 키운다는데, 왕녀는 그런 쉬운 애완 동물 하나 없이도 행복해 한다.

 

늘상 절제된 '좋은 생활 습관'은 물론이고 그것을 넘어서 김세린답게 우아한’ 생활 자세까지 당연히 몸에 배였다. 평소 꿀잠을 누리지만 단 한번도 공개 석상에서 졸아 본 적이 없다. 하릴없어 심심해서소파에 블러덩 드러눕지 않는다, 사실 소파의 용도는 나에게는 좀 짧다. 식사후에나 겨우 잠시 모은 다리로 앉아 창너머 그리 멀지 않게 보이는 市內의 산지평선이나 능선, 계곡들의 계절적 변화를 관찰하거나 혹은 다채로운 구름들의 유희를 바라보면 어느덧 행복감이 몽글거린다. 대도회의 집안 거실에서 계곡에 산등성이에 지평선 위에 눈내린 겨울 산을 감상함은 정말 복이다.

 

여름엔 좀 다른데, 소파는 안락한 시원한 가죽 침대이므로 드넓은 거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침대도 좋아하는 휴식처이지만 아주 피로한 경우 아니면 밤이 아니면 하릴없어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지 않는다. 남들처럼 침대에서 컴이나 독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왕녀의 일은 집중을 요하고, 자세를 어지러이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본성인지 김세린은 어디에서도 어느 상황에서도 지루함은 모르고, 세상은 온통 호기심 뭉치이며 애정 넘치는 기꺼운 희로애락의 행성이다.  

 

심심은 박완서 작가에게나 김세린에게나 유사하여 바쁜 혹은 엄중한 하나의 과제를 끝내고 난 뒤에 오는 그리고 다음 과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 ‘잠시 공백속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밀려오는 후련한 혹은 행복한 마음의 상황 즉 자유라는 뜻의 기호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복된 심심은 또 다른 창조를 위한 텅 빔의 상태인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여류 작가인 소설가 박완서 씨가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대표적 여류 소설가 박완서 별세

이 인용구를 보면 박완서 작가 앞에 여류라는 수식어가 있다. ‘여류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여성 앞에 붙는다, 이는 과거 남성들 위주 사회였던 시절, 여성을 폄하하고, 낮추어 보는 시각을 반영했고, ‘여류란 그런 존재였고 그렇게 표현되어도 마땅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대 탓에, 1847 19세기 중반 영국의 샬럿 브론테도 〈제인 에어〉를 커러 벨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발표했다.

 

박작가는 이 여류라는 수식어를 못마땅히 여겼다. 그녀는 소설가박 누구이지, ‘여류소설가 박누구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세월은 흘러 그녀의 사망 2011년에는 이미 한국 문단의 거목, 소설가 박완서로 칭해지기도 했으니 박 작가는 성공한 문인이 되었고 여성의 평등 증진에도 이바지 한 것 같다.    

 

김세린은 스스로를 자주 여성지식인으로 칭한다. ‘지식인 김세린으로 칭해도 되지만 말이다. 구태여 여성수식어를 붙임은 무심이다. 김세린의 어감으로는 더 중립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더 이상 여류여성이니 하는 젠더 구분에 기분이 상하거나 더 당당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졸에 박사라도 미국 박사라도 교수라도 여성들도 남성들도 시민성이 결핍된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하기는 각종 다양한 심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물며 여성지식인으로 나아가 정의로운’ 여성 지식인으로서 존재를 드러냄은 실로 중대한 모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대졸 이상 배운 위선들의 갖은 악랄에도 불구하고,  왕녀는 미개한 韓사회 상황에서 ‘‘여성지식인으로 행복하게 글쓰기 한다. 김세린의 여성은 더 이상 불만이지 않고 오히려 더 평등을 발산한다

 

 “죽기 전에 한번은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박작가가 마지막 산문집에 쓴 글귀이다. 작가가 80년 생애를 살면서 거짓말을 많이 한 것도 아닐텐데, 80살 타계 1년 전 펴낸 수필에서 정직을 좌우명한다는 것은 무슨 일일까. 산문을 읽은 것은 아니기에, 유추컨대 韓사람들이 특히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수시로하길래 들었던 다짐 아닐까 싶다. ‘정직다짐과 생활화는 박작가보다 위선자들 진짜 거짓말쟁이들이 해야 한다.

 

 김세린은 정직다짐은 필요가 없다, 본성적으로 정직하고 실제로 정직하게 살아왔으니까.  10여년 전에 처음 한국사회 현장과 맞닥뜨렸을 때, 정치인을 비롯 멀쩡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늘어 놓길래 많이 놀라고 비분강개 하였는데, 지금은 그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한다. 正直이라는 사람이 깆추어야 할 기본 품성을 도외시하며 잔꾀 부리는 눈치영악을 낫게 치는 세태는 韓사회의 병폐이다. “정직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흔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