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호수·꽃
*황무지·호수·꽃
여름은 우리를 놀라게 하였지요
슈타른버거 호수 너머로 소낙비 내려
우리는 주랑에 잠시 머물렀다
이윽고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요.
러시아 여인이 아니에요, 리투아니아계
진짜 독일인이라구요.
Summer sur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colonade, 열주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Bin keine Russin, stamm aus Liatauen, echt deutsch.
(세린번역)
사월이면 소환되는 詩, "여름은 우리를 놀라게 했지요" 바로 이 구절 때문에 여름에도 떠오르는 시, 英詩 "황무지"를 20대에 만났고, 지금도 아주 가끔 읽는데, 10여년전 詩에서 ‘슈테른버그sternberg’라는 독일어 호수의 이름을 발견했다. 독일에 위치한 어떤 호수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다 근년에는 그 ‘슈테른버그sternberg’ 호수는 ‘베를린에 있을거다’ 라고 지레 짐작하였다. 독일 전역에도 그렇지만 베를린만 해도 호수가 많으니까. ‘어디쯤 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간 틈나면 한번 찾아가 보리라 했다. 영국 시인인 엘리엇이 무슨 연유로 독일 호수를 자신의 시에 끼워 넣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다 작년 여름에 불현듯, 그 詩 속 남녀가 갑자기 쏟아지는 여름 소나기를 피하려 주랑으로 달려갔고, 다시 햇살이 들자, 두 남녀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시의 정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스스로 그 호수를 직접 찾아가서 호반을 거닐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며 시를 다시 음미하거나, 그곳을 스쳐갔을 시인을 상념하고픈 감흥이 일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그 ‘슈테른버그sternberg’ 호수의 위치를 찾게 되었는데, 아뿔싸 제법 한참 걸렸다. 왜냐하면 그 ‘슈테른버그sternberg’ 호수는 베를린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시를 다시 읽어 보니 정말로 그 호수는 존재치 않았다, 호수 이름이 달랐다. 정확히 ‘슈타른버그Starnberg’ 호수. Starn은 뜻이 없지만, Stern은 ‘별’이란 뜻이니 그동안 착시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슈타른버그 호수는 베를린이 아닌 저 아래 뮌헨 근처에 있었다.
작년 한여름. 아침 잠이 많아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몹시 힘든 세린이 베를린에서 애써 첫새벽 기차를 잡은 것은 이 호수도 겸사로 둘러 볼 것을 목적했기 떄문이다. 뮌헨에 도착하여 완행 열차로 갈아타고 당도한 슈타른버그Starnbergs’ 호수는 아주 컸다. 수면은 밝은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눈부시게 빛나고 저 멀리로 섬이 보였고, 호수가에는 날씨가 좋아 ‘집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물 위에는 서핑 돛대들이 한가하게 떠있었고, 보트를 타는 연인들도 보였고, 가까운 호수 가에는 바닥에 돌들이 다 비추이게 물이 맑았다. 나는 호숫가를 천천히 이리저리 구경하며 거닐다가 벤치에 잠시 않았다가,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시먹었는데, 아주 차겁고 맛있어 2알을 더 먹었다.
뮌헨의 오전에 드넓고 아름다운 평화로운 슈타른베르크 호수에는 아무도 수영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운동화를 벗고 호수 속에 맨발로 들어가 호숫물을 생생하게 감촉하고 싶었지만 발이 젖으면 운동화가 젖으면 안되지 싶어, 손으로만 수정 같은 물을 여러 번 퐁당퐁당 놀았다. 그러다 12시경 알프스를 향할 발걸음을 준비를 할 즈음, 한 떼의 소년들이 몰려 오더니 시끄럽더니 옷을 휘리릭 벗더니 물 속으로 첨벙 들어가 수영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 옳거니, 그때까지 아무도 수영을 안한 이유가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니 슈타른버그 호수에서 수영하고픈 맘이 일었지만, 가야할 낯선 여정이 남아있어, 훗날로 미루고 세린은 알프스로 향했다. 호수에 내려앉은 안개나 비가 아닌 그날 우유빛 밝은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호수가에서 옛 시인의 시상에 감응하며 젖을 모종의 노스텔지어는 일지 않더라.
베를린에 근처 공원에는 봄여름철이면 라벤더, 아이리스, 나리, 해바라기, 장미, 찔레꽃등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니 공원 옆을 지나면 꽃향기가 코 끝을 감돈다. 빵 사러 지나다니며 흘깃흘깃 보더라도, 가히 꽃 잔치가 벌어졌구나 싶을 정도로 화단이 여러 형태와 형행색색 색갈들 향기들이 어우러지는 꽃들로 가득하다.
이 공원에서 장미는 특별하다, 꽃송이가 정말 크기 대문이다. 내 주먹보다도 더 크다. 나는 그렇게 크고도 탐스런 보름달 같은 어여쁜 장미 꽃송이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큰 장미꽃들 옆에는 꽃송이가 그 1/3정도 되는 장미들이 피어 있는데, 아마 넝쿨 장미들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미꽃처럼 보이는 붉은 꽃들이 어여쁘게 피어 있는데, 멀리서 보면 장미꽃인가 싶어도, 가까이서 다가가면 꽃송이와 잎새가 장미와 분명 다르다, 장미가 아닌 것 같았다. 장미도 아니고 찔레꽃도 아니고 ‘대체 저게 무슨 꽃인가’ 볼 때마다 꽃 이름이 궁금하였었다.
나는 한국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던 습관은 베를린 와서도 걸어다니길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심히 느낀 바 있어’ ‘걷기’를 아주 즐겨하게 되었다. 세린이 오래 살았던 정다운 샬롯텐부르크는 일부러 걸으면서 주택가나 조형물들이나 거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뿜뿜하다. 거리 속을 걸을 때 마다 언제나 새롭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사물들이 새삼 눈에 띄기도 하고 가옥들은 참 예쁘다. 베를린 보눙들은 대개 큼직한 화단을 갖추고 있고 그 곳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는데, 대개 장미들이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곁에는 공원에서 보았던 그 화사한 자홍색 묘령의 꽃들도 있다. 아 저 꽃의 이름이 무얼까?
작년 초여름 나는 팻말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 그리운 바다를 향해 걸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tv티비 화면으로 보이던 풀들이 바람에 휘어지던 모래언덕이 나올 것이고 그리고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거기엔...나는 바다를 만나리라는 호기심과 기대에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올라 오직 전방을 주시하면서 바다를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아 가벼운 전진을 방해하는 세찬 바람을 만나고야 말았다. 날이 흐리지도 않았고 태양이 밝아 환한데도 바람만은 얼마나 세찬지 나는 옷깃을 여미고 양산은 접고. 고개를 숙이며...전진을 계속 시도했다, 바람부는 사막의 영화 장면 속 사람들처럼... 생전 처음 북국의 바다를 만날 일념으로 앞만 보고 가는 도중, 길옆에서 어디선가 자꾸 나의 눈길을 끌려고 애를 쓰는 듯한 존재들의 간절을 느꼈다. 무언가 뒷골이 땡기는 듯한...나는 옆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 놀라워라. 낯익은 친구들, 모래 언덕 길가에는 양 옆으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산산히 부서진 이름같은 자홍색 꽃송이들이 꽃잎 속에는 노랑 수술을 품고서 수십송이 무더기로 군락지어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꽃들, 왕녀가 베를린에서 ‘묘령의 꽃’이라며 이름을 몰랐던 그 꽃들이 하얀 모래 언덕에 야생 잡초들 속에서 수십여개의 꽃송이 군락들이 그 세찬 바람 속에서도 붉은 꽃잎과 초록 잎사귀로 그 잘난척 도도한 장미 못잖게 화려한 빛깔로 저들끼리 옹기종기 복되게 피고 지고 살고 있었던 거다. 나는 다가가서 그 꽃들을 잠시 관찰하였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바람이 가라앉으면 의기양양하게 반듯한 자태를 추스르며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세린 왕녀님, 우리는 세상에 하나 뿐인 붉은 심장인 걸요’ 자랑하는 듯이...베를린이라는 대도회의 그 안온한 화초들일랑 조금도 부럽지 않다는 듯이...
그렇지만 말이다, 대체 저 바람 세찬 바닷가 모래 언덕에서도 요염한 자홍색으로 누구를 기디리는 것 같지도 않게 여여히 아름답게 눈부시게 피어 있는 저 꽃들의 정체는 이름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꽃들에서 눈을 떼어 비로소 둘러보니 온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온갖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한 황무지. 몰아치는 세찬 바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나를 넘어뜨리게 할 드센 바람 속에서. 모래 언덕 위 들판에 서서 나는 마치 영화에서나 본 무어랜드의 한가운데 와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순간 빠질 정도였다. 바람부는 너른 들판을 황홀하여 희열하며 이리저리 먼 곳까지 눈을 둘러 보았다. 언덕 너머엔 생전에 보지 않았던 유럽 북국의 바다가 있지. 바다 찾아 왔다가 덤 선물로 만난 황무지 들판의 마력에 나는 얼이 나갔다. 오래도록 유럽 대도회에서 안온한 왕녀의 삶에 바람찬 북유럽의 황무지와의 조우는 신선한 충격..,지금도 살갗으로 생생한...
사실 근년에 세린은 영화 〈폭풍의 언덕〉을 오다가다 부딪쳐 맨 뒤부분을 약 10여분 보았는데, 영화가 히스그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나고, 그들의 자손들은 ‘아무런 탈없이’ 서로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되어, 둘이서 각각 말을 타고서 바람결에 머리칼 휘날리며 다정하게 무어랜드를 내달리면서 영화가 끝났는데, 바로 그 바람불고 말들이 뛰어 다니던 황무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일으키는 유럽 북국의 황량한 들판 한가운 데에 내가 서 있다는 느낌...
이름 모를 들풀들이 무성한 무어랜드에는, 유럽의 도희의 날씨도 원래 그러하듯, 구름과 비와 태앙이 번갈아 숨기놀이 장난을 부리는데, 나는 어느새 바다를 뒤로 한 모래 동산의 정상에 서 있었고, 지나온 아래 언덕에는 묘령의 꽃들은 자홍색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내가 詩 〈황무지〉의 ‘그 호수’를 직접 발로써 걸어서 돌아 보고, 그곳 공기를 마시고 태양의 부드런 눈빛과 손길을 보았으며 잡았으며 수정 같은 맑은 물을 촉각해 보고, 벌써 100여년 전에도 있었을 서핑과 요트들 그리고 보트들을 보았고, 영국 시인과 교감하고, 때로 햇빛과 구름이 번갈아 어룽대며 그늘을 만들었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强바람이 사람을 넘어뜨리려 덤벼드는 ‘무어 랜드’ ‘폭풍의 언덕’을 바닷가 황량한 들판에서 쓰러질 듯 온 몸으로 체험한지 벌써 1년도 더 지난 요즘. 서울에서 나는 그 묘령의 꽃의 정체를 알아내겠다고 작정하다가 문득 약 수년 전에 만난 글귀를 환기해 냈다. 혹시 ‘그 꽃’이 아닐까?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박경리의 소설 <토지> 5부 완결편 마지막은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서희의 손바닥엔 피가 낭자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을 덧붙인다. 나는 그 〈토지〉를 읽지 않았지만, 김윤식을 통해서 결말 부분은 알게 된 것이다.
구글링을 통해서 ‘해당화’를 검색했고, 결과는 그 묘령의 꽃은 다름 아닌 한국인들이 흔히 ‘토종 꽃’으로 짐작했을 해당화 였다. 이제 직접 경험한 바로는 해당화는 한국의 바닷가나 유럽 대도회 베를린의 화단에나 공원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북해 황무지등 어디서든 호화롭게 아름답게 요염하게 피어서 잘난 장미와 좀 못한 찔레꽃들과 미모를 경쟁하며 생생 살아가는 꽃인데, 박경리는 평생을 바친 자신의 작품 〈토지〉의 대미를 해당화로 장식했고, ‘눈멀고 귀멀었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연애 시인’ 만해도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고, 나는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믈으며 ‘에로틱하게’ 노래했다,
여류시인 노천명은 ‘젊은 정열들’을 ‘해당화처럼 무더기 무더기 피었다’고 직유 했고, "푸른 물, 흰 모래, 새빨간 해당화"로 이미지화 하였다.
1944년 조인성 화가는 해당화를 마치 분홍색 장미처럼 그렸는데... 평소 까불이 김세린만이 해당화가 어떤 꽃인지 몰랐던 것. 객체의 이름을 모르니, 묘령이니 머니 무지만발 열심히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에 읽었던 외국 시구들이 가슴이나 머리 속에 잠자고 있다가 어느날 깨어나 그 시 속의 지명을 굳이 찾아서 고속철과 완행열차를 이리저리 바꾸어 불편을 감수하며 타고서라도 기어이 낯선 호수에 당도하게끔 끌어 당기는 불꽃, 세린만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은 청춘시대에 만났던 책 속의 여러 인물들과 지역들과 마을들을 찾아 헤맨다, 그것은 탁월한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들은 저자와 독자의 시차를 뛰어넘어 어떤 감각을 공유하려는 노스텔지어가 아닐까. 前人과 後人은 공감하려는 정서 속에서, 세계의 표면에서, 빛과 파도와 바람과 대지의 쌉쌀한 향기 속에서...
세린 왕녀가 슈타른버거 호수도 해당화도 무어랜드도 늦게사 그 이름들을 불러 주니 그들은 한층 더 반짝이고 친근해지더니 내 품에 안겨오더니 하나의 의미가 되기도 하였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살고있는 와중에 20대 젊은 날 음송했던 詩의 이국의 고향을 서슴없이 애써 ‘詩의 영토’를 찾아보는 그 행위는 무엇일까...우리를 어디든 하염없이 이끄는 이 이름모를 힘을 김윤식은 ‘환각을 찾아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