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대국 대한민국’이라는 나의 기획으로 조국에 대한 나의 소망과 비전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글은 정제되지 않은 초고이다. 따라서 문장이 매우 거칠다. 생각이 앞서므로, 부끄럽지만 그래도 일단 게재한다. 이 기획과 관련, 논지는 차후에 새로이 그리고 정밀하게 쓸 예정이다.
4,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찰
*하면 된다! 우직하게 일하자! 공부하자! 그리하여 자아와 세계를 꽃피우자!
*대한민국은 '강대국의 길'을 간다!!!
우리는 새나라를 세우자. 한민족史 5000년 동안 단 한번도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런 새나라! 이름하여 ‘강대국 대한민국’! 이제껏 우리나라는 “약소국”으로 他는 물론이고 我도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했었다, 근년들어서는 조금 격상된 “중견국”으로 스스로를 매김한다. 통일이 되면 강대국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는 미래 희망적인 말들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약소국, 중견국 의식과 자아규정은 이제 떠나보내야 하며, 대신 신선하고 유혹적이며 향기로운 ‘강대국’의 결의로.이 나라는 드높은 수준을 획득해야 한다고. 우리 한민족이 본래 특출하고 우수하며 영광스런 삶의 양식을 이끌 수 있고,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고.
한민족이 태산같은 거대한 도전 앞에 서 있다. 이 도전은 그러나 무섭지 않다. 오히려 한 번 해볼만한 ‘적절한‘ 과제이다. 이는 한민족이 살아온 5000년史에서 가장 멋지고도(wunderbar, wonderful) 장엄한 행진이 될 것이다. 이 도전은 한민족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고, 더욱 견고한 독립과 자존과 위엄과 존엄과 광휘를 선사할 것이다. 진취적인 한민족은 세계사의 도전에 맞서 수동적으로 반응reaction만을 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국사와 세계사를 새로이 쓰기 위하여’ 도전을 찾았고, 인식했고, 수용했고, 그리고 승리하기 위하여 힘차게 시작할 뿐이다. 이 도전이란 이름하여 “강대국 대한민국" 건설과 유지와 향유이다. 이 나라가 '강대국'이 되어 넘실되는 푸른 태평양 바닷물 위에서 흔들림 없는 거대한 바위같이 우뚝한 한민족의 자립과 독립의 꿈을 이루고,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는 등불이 되는 멋진 민족이 되자. 미루지도 말고 실패하지도 말자. ”지금 여기 우리“가 이 도전을 기필코 성공시키자, 승리하자!
21세기 초 “강대국 대한민국”의 실현과 완성은 5000만의 노력과 열정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한국민들은 본시 근면하며, 성실하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려고 분투 중이므로, 지금까지처럼 자신의 직분과 책임을 다하면, 10년 후 2025년에는, 한국은 강대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민의 소질과 역량은 진흙에 묻힌 원석과 같으므로, 이것을 발굴하여 보석으로 가꾸면 한민족의 잠재력은 폭발할 것이고, 그 성취는 먼저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이고, 나아가 세계를 다시 놀라게 할 것이다. 이에 우리 민족의 잠재적 역량을 발휘하게끔 꿈과 비전, 국가 목표를 제시하고, 촉구하고, 격려하고, 보상하는 깅력한 리더쉽이 요구된다. 오늘은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고, 그것을 새로이 규정하며, 이 강한민족의 정체성을 개발하고 촉진시킬 리더쉽을 요구하며, 우리의 각오를 되새기려 한다.
1. 그들의 ‘강대국 정체성'
우리 주변엔 소문난 강대국들이 득실거린다. 입술이기도 하고 방아쇠이기도 한 한반도가 매력적이라서 고래들이 와서 꼬리를 친다. 이 유명한 고래들 중에서 두 개의 고래를 예로서 들겠다. 그들은 왜 브라질이나 캐나다처럼 덩치 크고 배부르게 살면 되겠지만, 굳이 제국이려고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될 수 있다. 나는 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특별한 마음mind에 주목한다.‘개인도 민족도 스스로를 규정하는 만큼 스스로를 구성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한국인이‘우리는 약자’라고 스스로를 인정했을 때, 그들은 강대국들의 눈치를 열심히 보고, 소리 지르면 움칠하며 물러서고를 반복하였다. 약소국의 마인드이며 행태이다. 우리는 이제 이 약소국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나는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 비실비실한 나라의 국민이고 시민이고 숙녀이고 싶지 않다. 강대국들은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민족’으로 규정하고 그에 알맞은 마음과 행동을 개발하고 지키며, 강건하게 살아왔다. 그들의‘정체성만큼’의 국가와 민족은 정치를 행하고 삶을 영위해 왔다. 21세기에 강대국으로 경쟁하는 두 나라를 한번 살펴보자.
1) 미국은 왜 강대국인가?
미국이 강대국임은 자타가 인정하는데, 그 실증적 자료는 수북하다. 오늘 나는 그 자료들을 공개하며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일으키게 한 ‘마음의 창' 즉 의지와 의도에 주목한다. '미국 예외주의' 말이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유명하다.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조롱도 받지만, 이 나라가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설 수 있었던 근저에는 이 이데올로기가 있다. 자신들은 '특별한 사명과 능력을 지닌 민족'이며, ‘미국은 다르다’는 신념, 믿음. 1630년대 존 윈스럽John Winthrop은 신대륙에 영국인들도 눈부시게 쳐다볼 위대한 ‘언덕 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를 건설하자고 외쳤다. 하나의 멋진 ‘언덕위의 도시’를 건설하기 원했던 이들이 바로 미국의 예외주의를 탄생시킨다. 이는 미국 우월주의라는 표현과도 연관되어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특권의식이 미국 예외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 예외주의는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쉽게 발전한다.
미국이 예외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본’ 사람은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이다. 1835년에 펴낸 저서 <미국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미국에 대해 “어떤 섭리에 의해 언젠가 세계의 운명을 떠안게 될 ‘예외적 위치’에 있다"고 내다봤다. 이후 미국이 세계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진 나라로서 200년 가까이 미국의 예외주의는 대외정책의 한 축이 됐다.
그에 現미국대툥령 버락 오바마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오바마는 “미국 예외주의를 믿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는 미국의 예외주의를 믿는다. 영국인들이 영국의 예외주의를 믿고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의 예외주의를 믿는 것처럼” 대답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국을 “언덕위의 빛나는 도시”라고 부른 것도 그 맥락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신의 선택에 의해 세계의 모델이 되라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 받았다고” 미국을 찬미했다.
미국 예외주의는 남들도 인정하는 듯하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미국인들이나 유럽인들이나 미국이 얼마나 독특한 나라인지를 가끔 망각한다. 미국 외에 자유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건설된 나라는 없다”. 상당수 미국 학자들이 미국 예외주의가 신화와 환상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할지언정, 미국인들의 ‘우리는 특별하다’, ‘다르다’는 ’아메리카 정체성‘은 ’우리는 뛰어나다’는 것과 연결되어, ‘탁월하다면 남들을 지도하는 게 자연스럽다’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고귀한 정체성으로써 인정함으로써 미국은 오늘의 강대국을 이룬 하나의 정신적 기포가 된다,
2) 21세기 중국은 왜 강대국인가?
2015년 4월 현재, 중국의 인민 개인소득은 약 7000달러로 추산된다. 한국의 1/4정도 밖에 되지 않고, 일본과 미국에는 더욱 더 크게 못미친다. 그럼에도 21세기 미일은 그들의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잠 깬 사자인 듯’ 두려운 눈으로 쳐다본다. 연전에 보니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는 중국의 인구와 민족주의를 언급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부상하는 중국에 가지는 서양인들의 공포를 보았다. 중국의 개인소득이나 기술을 보면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중국을 강대국으로 간주한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AIIB나 “아시아 운명공통체”나 “일대일로”라는 新실크로드 구상에서 이미 드러내고 있다. 중화민족의 제국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본다.
인구도 많고 땅도 넓지만 개인소득으로만 보면 개발도상국 중국은 왜 강대국이라 간주되는가? 그들이 스스로를 ‘대국’이라는 정체성과 비전을 부여했고, 그것을 향하여 뚜벅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국’이라는 자아 정체성은 제국적 중화민족의 부흥을 기획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인의 잠재력을 깨우는 중이다. 그들이 규정하는 강대국 정체성이 “신형 대국”으로 중국몽의 표현이다. 대국론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쇠락한 중화민족을 다시 제국으로 일으키고자 한다. 1820년 전후 청나라의 GDP는 영국보다 7배이상이었고, 산업 생산량은 세계총생산량의 33%로 4.3%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그런 중국은 역사적으로 3000여년간 제국이었기에 다시 제국을 꿈꾼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다. 이들의 역사결정론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한다. 대국이라는 민족정체성이 내부적으로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강대국 비전을 받아들이게 하고, 외부적으로는 강대국 행태를 자아내는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2 현대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약소국? 중견국?
1) "강한민족 强韓民族”은 우리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나는 앞 장에서 해방 후 지금까지의 한민족의 업적과 성취를 들어 한국인의 "위대성"을 발견하였다. 나의 발견은 나만의 발견일까. 실증적 지표가 ‘강국’을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왜 지금도 “새우”소리를 들을까? 그 비유를 그대로 받아들일까? 한국인들이 약소국 정체성을 의심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한국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영원히 굽신거리며 살게 될 것이다. 지난 세기 35년간의 피식민 경험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최악이었다. 민족의 기상을 꺾고 정체성마저 더렵혀졌다. 기실 35년이란 시간은 기나긴 한민족 역사에서 극히 미소한 연대기로써, 오늘 강대국인 러시아같은 타국들이 200년 이민족 지배를 받은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건만, 한국은 '그 짧은 시간안'에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을 완전 상실하고서는 스스로도 그렇다고 비하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안된다. 이제는 우리의 건강한 본성을 되찾자. 강하고 진취적이며 성실하고 근면한 한민족의 속성을. 한국민의 그 본성을 잘 살려 이제는 강대국을 ‘꿈꾸고’ ‘비전으로’ ‘국가 목표’으로 정하고 전진하자.
2) ‘한국 예외주의’?
‘한국 예외주의’를 전망한다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미국 예외주의"나 중국 중화주의를 그들은 이미 긴 역사로서 증명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상은 기껏 길어야 60여년이다. 한국 예외주의를 증거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그러나 한국의 예외주의란 ‘경험’에 근거하는 실증이다. 즉 미국의 그것이 신화에서 출발하였다면 한국은 지난 60여년간 스스로 현실로서 증명한 것이다. 한민족은 위대한 민족이고, 그러므로 강대국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자질을 타고 났다. ‘시작이 반’이라니 ‘지금 여기 우리가’ 시작하면 이미 半은 된 것이고, 한민족 전부가 이미 체험했듯이“하면 된다”. 그리하여 "강대국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한민족을 촉진시키고, 원대한 목표로 이끌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 때 神의 가호도 함께 할 것이다.
3. 비전, 국가 목표로서의 “강대국 대한민국”은 리더쉽을 요구한다
국가 목표, 국가 비전은 안보와 번영과 구성원의 행복의 증진인 국가의 목적 달성에 중요하다. 거대한 인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는 이를 이끌어 가는 유능한 정부를 원하고 정치는 그 수단이 된다. 올바른 정치란 국민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키우며 꽃피게 하는 것, 이를 위해 정부는 기꺼이 배의 선장 역할을 한다. 영어의 정부 government와 통치자의 governor는 그리스어의 Kybernetes에서 기원을 갖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1) 이 나라의 리더쉽은'한국호'라는 배의 키잡이이며 조타수이다. 이 때 비전과 국가목표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잡아주는 배의 네비게이선이며 나침반이다. 대한민국 국가의 선장은 뿐만 아니라 나라의 더 원숙한 단계로의 도달을 지휘하게 된다. 한국호가 떠있는 동북아의 파도는 거세지만, 강대국들이 우글거리기에, 모험심 돈독하고 탐험적인 한민족의 도전정신을 일깨운다. 선장은 한국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식하고 그 기질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선두 지휘해야 한다. 책임과 희생을 아끼지 않으며.
지금 우리 대한민국호는 변환되는 세계사의 격랑 앞에서 무서워 덜덜 떨고 있다. 모두들 나라를 탓하고 외교를 나무란다. 대한민국호는 멈춰있다. 우리는 과거의 산업화, 민주화 발전에 도취하여 기강이 해이되고 한국인의 자랑인 열정과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이들을 다시 찾아 와야 한다. 이 정체되어 있는 대한민국호를 앞으로 전진시켜야 한다. 깃발을 나부끼고 승리를 향하여 뱃고동을 울리자. 담대하고도 희망찬 리더쉽이 긴절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또 다시 분투하고 싶은 '오늘 여기 우리 한민족'을 이끌 대통령의 하는 일은 남달라야 한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은 강대국으로 간다”는 도전적이며 아름다운 비전의 제시다.
2) “강대국 대한민국”로서의 비전과 국가목표는 한국민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폭발시키며, 새롭고도 강인한 정체성을 형성시킬 것이다. 비전과 국가 목표는 한 개인의, 한 민족의, 나아가 인류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진취적인 한국인을 이끌 리더쉽이라면 마땅히 이 국민들을 그 본성대로 능력대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삼 리더쉽의 역할을 음미햐 본다.
*리더쉽은 우선 국민의 욕망을 일깨운다. 강렬한 욕망은 성취와 그에 수반되는 장애물을 극복할 에너지와 추진력을 생기게 한다;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게 하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여,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그것은 땀과 눈물을 치를 각오를 하게 한다. 리더쉽은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목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시간을 단축시키고, 시간 소모를 최소화 시킨다. 글로 쓴 목표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거, 목표설정은 선택과 집중을 촉진 시키며, 인생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키고 아울러 자신감을 낳고 높힌다.
목표는 합리적 결정을 가능케 하고, 갈등을 줄인다. 리더쉽이 제시하는 비전과 국가 목표는 망설임보다는 일직선으로 나아가게 한다. 리더쉽이란 비전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10년 안에 강대국으로 변신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다고 앞장에서 언표하였다. 근면과 열정은 본시 한국민의 속성이며, 능력과 자질은 한국민의 소질이므로, 지금까지처럼 온 국민이 자신의 자리에서 직분과 책임을 다하고 그리고 조금 더하면 된다고 본다, 5000만 국민이 하루 2시간 더 노력하고. 정부는 만연한 비리와 부패를 줄이고, 기업은 품질위주로 생산품을 제조해 가면, 상인들은 세계시장에서 무역을 부지런히 일구면, 우리의 원대한 장엄한 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낙관한다. 리더쉽은 국민들의 성실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그 힘이 원천인, 국력과 외교력을 창출하고 상승시킬 것이고, 나라는 더욱 강대해진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나라의 리더십이 이런 열정적 국민들을 부정이나 비리 부패로 실망시키지 않고, 방향 제시와 제도정비와 개혁과 실천으로 한국호를 조종한다면.
강대국으로 가는 그 여정에 사람들은 흔들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비전으로 다시 일어서고, 흔들리지 않는 목표 달성을 향해 전진하자. 21세기는 제국시대의 도래이다. 지구는 몇 개의 권역으로 나뉘어져, 강대국들의‘숨결’이 감지될 것이다. 우리는 강대국들의 입김만 쏘이는 무력한 한국인일 수 없다. 한국인의 우수함으로 동아시아에, 세계에 한국인의 얼을 전파하자. 비전으로 세상을 바꾼 역사적 실례는 너무 많다. 평화와 희망의 깃발을 나부끼며. ‘약소’ 한국을 ‘강대국’의 정체성으로 전환하자. 재무장된 '지금 여기 우리'가 당장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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