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불가능한’ 꿈-한송이 아름다운 고귀한 장미꽃을 피우기 위하여
EU는 도난을 당했다, 한밤중 도둑이 들어 빛나는 별 하나를 하룻밤 사이에 그만 잃어 버렸다. 브렉시트라는 도둑을 만나 영국이라는 번듯하고 알찬 구성원을 잃은 유럽연합(EU)을 두고 드는 필자의 연상 작용이다.
‘브렉시트는 오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단언했던 필자를 머쓱하게 만든 6월 23일의 영국인들의 투표 결과는 평소‘무지한’ 필자의 빗나간 예측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clever한 EU 자신도‘우리는 영국 탈퇴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않았다’는 ‘그날’ 다음날 코멘트를 냈다. 브렉시트는 정말 한밤중 도둑처럼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과 세계를 덮친 것이다.
투표 결과가 나온 후 영국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정치 이로니 Politische Ironie다. 영국인들은 투표 결과에 스스로 놀라더니, 민주주의 종주국답게 민주적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보다는, 외려 ‘재투표하자’는 청원에 400만 이상이 동참하는 중이다. 보리스 존슨 前 런던 시장의 행보도 이로니이다. 애초에 잔류파였던 그가 캐머런과 반대편에 서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이유는 수상이 되려는 권력에의 의지였다고 언론들은 전했는데, 막상 추구했던 ‘브렉시트’ 결과가 나오자마자, 종적을 감추었고, 여론이 나빠지자 급기야 차기 총리 후보 출마를 포기하였다. 데이빗 캐머런 現총리 역시 정치 이로니이다. 그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Referendum을 공약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캐머런은 2010년 부터 총리로 재임하면서 지속적으로 EU를 비난하여 EU 이미지에 영국인들의 비호감도를 상승시켰는데, 2015년에는 적극적 EU 잔류파가 되어 "IN"을 호소했으나 이미 늦은 것, 캐머런 총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따라서,‘이번 4년 임기 후 끝“이라고 스스로 ‘겸손하게도 천명했건만 그마저 다 못 채우고 ‘의도치 않게’ 조기 퇴진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브렉시트의 정치 이로니이다. 작금에 영국이라는 국가도, 국민도, 정치 엘리트들도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보기드문 ‘정치 이로니’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유럽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정상급 정치가들은 브렉시트에 대해 감정적emotional 소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메르켈 수상은 “고통스럽고schmerzenhaft”,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는 “검은 날schwarzer Tag”이고, 융커 유럽연합 Kommission 의장은 “슬프다 traurig”, 캐머런 수상은 "매우 슬픈 밤 very sad evening"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가들이 냉정을 (잠시) 잃고 이렇게 감정 언어를 쏟아내는 것은 역사상 드문 일이다. 필자가 4월에 쓴 칼럼에서 설명한대로, EU는 투표 전에 캐머런 총리의 요구안을 모두 수용했기에, ‘영국 탈퇴’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늦게사) 2000년도에 정치학 공부를 시작하던 그해, 나는 지금도 생생한 인상 깊은 하나의 글구를 대했다, ‘우리가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그나마 지금 누리는 것들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막스 베버의 말, “불가능한 꿈”이란 무얼까, 아마도 ‘너무 멀고 너무 높아서, 인간이 감히 시도해 보기에는 혹은 추구하기에는 불가능하게만 생각되어지는 어떤 과업이거나 理想’을 뜻할 것이다. 인류에게 한 때는 ‘달 착륙’이 그런 꿈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달 착륙을 넘어 ‘달 소풍’을 꿈꾸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말이지. 그전까지는 너무나도 머나먼 “불가능해 보이는 꿈”으로서 간주되었으니 인류는 ‘불가능한 꿈’을 꾸기 시작하고 추구함으로써 어느덧 도래한 꿈의 실현을 보게 된다.
20세기 전반부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치면서, 상상을 넘는 잔혹과 살상을 거치면서, 거대한 규모의 인적 물적 자원을 소진해 가면서, 그때서야 ‘전쟁의 의미없음’을 통감하면서, 의식있는 유럽인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그전부터 미미하게 전래되어 온 ‘불가능한 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했고, 전쟁이 끝나자 그 꿈의 실현을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전쟁을 일삼던 유럽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란 ‘유럽의 영구 평화와 번영’이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륙의 ‘다양한 국가들과 구성원들이 스스로 ’유럽시민‘이며 운명 공동체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하나‘가 되는 유럽 통합’을 이루어야 했다. 오늘날 28개국의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그 꿈의 ‘몽상자들로서 EU라는 하나의 지붕아래 모였다. 1951년 프랑스의 장모네의 발의와 슈망장관의 천명으로 시작된 6개국 참가의 “유럽석탄철강 공동체”가 발족되고, 1957년 로마조약에 의해 유럽 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2016년 5월까지, EU는 그동안 회원 가입 신청을 받으며 덩치가 불어나다가, 올해 2016년에, 내년 2017년 EU의 60살 환갑을 목전에 두고서, 브렉시트라는 도둑을 만난 것. 도둑이 한지붕 28개 별들 중, 그럴싸한 하나를 탈취하여 EU라는 단일체에 구멍을 내면서, 다른 별들도 흔들면서 스물여덟게 별들을 산산히 헤쳐버려 놓을 듯한 대도大盜로 보인다. 브렉시트는 지금까지의 EU 형성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보인다. EU의 ‘불가능한 꿈’은 차치하고 생존자체가 고비를 맞았다. 예상치 않았던 브렉시트로 인하여 EU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유럽지역질서의 판’이 뿌리째 흔들리는 듯 하다.
이번 브렉시트를 초래한 복합 요인 중 하나로 나는 경제적 요인보다는 정치적 측면에 주목한다. 만일 경제적 손익을 최중시했더라면,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 국민으로 평가받는 영국인들이 OUT을 택했을 리 없다. 그들은 브렉시트 결정 후 당장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예측했을 것이다.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후 닥칠 영국의 경제적 손실을 열렬히 설명하며 잔류를 호소했으나 결국 먹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결정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정치적 측면이 부각된다. 필자가 말하는 브렉시트의 정치적 이유를 두가지로 압축하자면,
1. 탈근대 EU에 대한 근대국가 영국의 승리-주권의 매혹
우리가 마치 공기처럼 무심히 몸 담고 살고 있는 현금의 근대굮가는 시공간적으로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적 현상이다. 이는 1648년 베스트팔리아조약에서 근대국가체제의 기원을 찾는다면, 겨우 370여년 된 ‘젊은’ 정치체이다. 이 근대국가체제는 근대 인간들이 실험한 여러 다양한 정치체들 중에서 선호받아 생존력을 키워 지금에까지 이른다.
근대국가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권이다. 국가의 주권은 일정한 영토 범위 안에서 대내적으로는 최고성을 대외적으로는 배타성을 표상한다. 특히 일정 영토 안의 한 국가의 군사, 안보, 외교, 통화 주권은 거의 ‘신성 불가침의 권리’로 인정 받았다. 이 ‘준엄한’ 주권 행사를 가장 오래 향유한 나라로는 근대국가 체제를 가장 먼저 수립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영국이 1973년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그들이 오랫동안 향유하던 주권의 일부를 연합에 양도하였고. 회원국으로서 두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근년에 증가한 난민과 동유럽에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후 몰려드는 동유럽인들의 유입은 이를 독자적으로 제지할 수 없었다. 유럽 역내 단일 시장의 자유 왕래 원칙에 의거 영국이‘자주적으로’ 동유럽인들의 유입을 제지할 수 없었다.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므로. 영국인들의 ‘주권’ 향수에 젖었다.
역내 시장의 인적, 물적, 자본, 노동의 이동을 자유로이 보장하는 유럽연합은 근대 국가의 표징인 영토의 경계를 허물어-‘탈근대’정치체로서 연구되기도 하는데- 그사이 60년 가까운 나이를 먹었는데, 영국이 근대국가적 주권 향수 혹은 주권 회수 욕구를 표출함에 따라, 이번 브렉시트가 발생함으로써,다른 회원국들도 영국의 길을 모방할 낌새를 보임으로써, 탈근대’ 유럽연합이 한 방 맞은 듯 비실거린다. 거꾸로 이는 근대국가의 생존력을 시사하는 듯 하다.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슬로건으로 “주권”, “독립”을 쓴 깃발을 휘날리며 템즈강을 누비며 선거유세를 했고, “우리가 우리를 통제해야 한다, EU가 아니라”는 보리스 존슨의 말은 근대국가 ‘영국’이 보장할 주권을 강조하였다. 가히 ‘주권성의 매혹’이라 명명해도 될 만큼. 영국인들은 주권을 탈취해 간 탈근대 정치체인 EU보다는 주권‘의 근대국가를 더 선호한 것 같다.
2. 영국의 위신 자의식
28개 회원국을 지닌 EU는 형식적 법적으로는 평등한 수평적 관계이다. 하지만 내부에는 각국의 인구와 GDP에 기준해 지불하는 분담금에 의해 실질적 위계적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독일이 최대 분담금을 냄으로써 유럽엽합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영국이 두 번째로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EU에서 차지하는 영국의 위상은 잘해야 독일, 프랑스 다음의 3등 정도이고, 아니면 이태리 다음의 4등 정도이다. 영국이 18세기 19세기 “영광스런 고립” 아래 유럽대륙의 여타 국가들의 분쟁 을 해결하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200년 남짓 하였는데, 그 ‘화려한’ 기억의 역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영국이, 21세기 초 유럽연합에서의 3~4등 자국의 위상은 영국인들에게는 불만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60대 이상의 영국인들의 60% 이상이 ‘주권’을 외치며, OUT을 찬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유럽연합의 올해 59살 생애는 점진적 발전인 선형linear이 아니었다, EU는 그동안 개별 유럽 시민들의 국민투표에서 번번히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 브렉시트를 위시, 유럽 유권자들은 유럽연합과 관련 투표의 기회가 오면, EU의 ’민주성 결핍‘ ’관료성 과잉'을 들며, 실은 당면한 국내정치적 불만을 EU를 향해 ‘반대‘를 표했다. 멀게는 2005년 유럽 대통령직 신설과 같은 정치 통합을 향한 야심찬 EU 헌법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비준에 실패했고, 최근 2015년 그리스 금융 위기시 그리스 국민들도 EU 탈퇴를 의미하는 EU 요구안에 NO를 표했었다. 이렇듯 EU는 외면과 좌절을 여러번 경험했다. 그러나 EU는 떠밀려 가지 않고 그 실패를 발판삼아 일보 전진하며 오늘에 이르는 변증법적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유럽연합에 대한 유럽인들의 비호감 여론은 드높다. 독일과 영국에서 48%, 프랑스에서 61%에 이른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보인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흐름’이 있다. 이번 브렉시트에서 영국인들의 25세이하 청춘세대들은 3/4인 75%가 잔류remain를 투표했다고 독일 정치인들이 여러번 강조한다. 만일 17세이상이 투표에 참가했더라면,‘잔류’가 승리했을 것이라며 볼멘 소리를 하는 영국 소녀도 보였다. 영국 청년세대들이 이미 ‘섬나라 국민’이라기 보다는 ‘유럽시민’ 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실증이다. 이들은 이제 새로이 가졌던‘유럽인’ 정체성과 생이별을 해야 할지, 아니면 기성새대들처럼 ‘유럽시민’이기보다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삼 다져야 할지 혼란스런 처지에 빠질 것이다. 연합에 가입한지 43년 만에 영국인의 청춘 세대의 3/4이 벌써‘유럽 데모스’ 정체성을 표출했다면, 유럽 대륙 諸국의 ‘유럽시민’성은 상당히 내재화 되었을 것임을 추론케 한다. 영국의 이 청춘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는 30년 후에는 과연 영국인들은 어떤 정서를 유럽 대륙에게 가질까.
작금에 브렉시트라는 해일과 다가올 후폭퐁의 위기에 직면한 EU는‘유럽의 영구 평화와 번영’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포기할까. 한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둔 밤과 비바람과 서리와 소쩍새의 울음이 필요하다 한다. ’영구 평화와 번영’의 ’하나 되는 유럽‘이라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고귀한 유럽의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더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특별한 능력을 요할지 모른다. 세계는 관심과 애정과 응원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helena 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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