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교수의 反사회적 궤변. 기본이 아쉽다
*“관조하는 인생”은 세속 국민과 시민들에겐 축 쳐진 죽음맞이 서글픈 수동적 인생 태도. 시니어들의 지식, 경험, 경륜,지혜를 존중하며 활용하며 ㅇ세와 100세에 이르는 모든 국민이 함께 어우러져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시니어들도 적극적 시민적 삶이 바람직.
*박근혜는 여전히 대한민국 대통령, 기자들은 물론 태극집회 참가자들과도 간담회를 자주 열어 자신의 진실을 밝혀 말하고, 집회 격려의 말씀도 하셔야 한다, 퇴임 그날까지.
깊이 있는 논문도 아니고 일간지 ‘얇은’ 칼럼 하나를 두고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싱거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칼럼 내용이 필자의 직분과 동떨어져 기이한데다가, 세대간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으며, 청년 인기영합주의 등도 내비치니 소폭 자극된다, 버젓한 일간지에 ‘껍데기’를 지껄이기보다는 국민 세금 국립대학 교수라면 좀 짭짤한 칼럼을 쓰시길. ‘개나 소나 아무나 쓰대는’ 진흙탕 인터넷 공간이 아니니.
평소 칼럼에 기대는 크지 않다. 그래도 내용, 문장력, 생각거리가 풍부한 칼럼을 만나면 순간 기분마저 푸근해진다. 어제 그런 좋은 칼럼을 하나 읽어 공감하며 ‘생각도’ 조금 해었다. 며칠전 읽은 송교수의 칼럼과는 딴판이다. 송씨는 남들이 뭐라든 말든 끄떡없는 맷집에 이르러렀단다 즉 유들유들해졌다니 편하게 한마디 하자.
시국이 어수선 하니 ‘정신’ 사업하는 소위 지식인들의 머릿속도 헝클어져 얼빠진 소리를 궁시렁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그런데 송교수는 한번도 아니고 몇번 계속하길래 ‘조로 노인 현상’인가 싶었고, ‘배부른 기득’ 교수가 수십년 고정 칼럼을 쓰다 보니 매너리즘과 권태, 교만함이 쌓여 저러나 싶었다. 스쳐버리려 했으나 인상적이라 그 감상을 몇자 적는다.·
전체적으로 이 칼럼 내용이 사회학자답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학문 ‘기초’를 의심케 한다. 작금에 대통령 탄핵 변호인인 서석구 변호사를 73세 노인이라며, 서변호사는 ‘노인답게’ “노년의 양식”인 “관조하는 삶”이나 누리란다, 즉 변호사 활동말고 (죽은 듯이 조용히) 살으라고 송은 냉소적으로 충고한다. 초보 사회학도라도 이런 말은 안한다. 사회학의 기본이 결여되어 있어도 중견 사회학자 되기는 가능한 모양이다,
‘지식, 경험, 경륜, 지혜가 복합된 노년세대는 국가의 귀한 자원, 100세까지라도 그들이 왕성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져 살며 보다 나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노년세대들의 좋은 활동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초보 사회학도라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정신과 신체가 건강한 70대 초반들에게 관조적 삶을 권유하는 것은 反사회적이다, 수십년전 하버드대학에서 몇 년간 공부한 이후. ‘한국이라는 매우 촌뜨기 좁은 우물안’에서만 내로라 활개치고 살아온 사람들과 다름없는 非시대적‘ 反사회적 생각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관조적 삶을 찬양하긴 했다. 하지만 현대 철학자가 노년이 사회 활동성도 없이 그저 ’세상 관조 찬양‘을 한다면 그는 ‘축쳐진 진짜 늙은 우중충 뒷방지기’이다. 하물며 사회학자라면 더욱....
조로현상인 듯 송교수는 “전율”을 자주 느끼는 모양이다. 지난 어느 칼럼에서 왈,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고도 훈련을 통해서 메달을 많이 따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그들이 ‘나는 할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고서 혹독하게 훈련한 것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하며 전율이 흐르더라’는 거다. 이 세상 모든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들의 재능 한계를 넘기 위하여, 지독한 훈련과정’을 거치는데, 그런 장면들을 티비를 통해서 볼 때면 ‘나는 저렇게 열심히 살아보지 못한 것’에 조금 반성도 하고, 그들의 연습의 수고를 칭송하고픈 본받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송교수는 ‘왜 오싹 등골에 전율이 흘렀다’고 -긍정적 시선을 거지지 못하고- 냉소 반응을 보일까. 수많은 스포츠인들의 피나는 훈련이 웬 ”자기최면“이고 웬 소름(전율)일까? 배부른 국립 철밥통 교수의 조로현상? 요새 한국에 ‘소름 좀비’가 숨어서 돌아다닌다는데 한방 크게 쏘인 모양이다.
송교수는 작년 가을 시위가 터지자 ‘거국내각’을 추천했다. 작금의 탄핵정국이 보여주듯 제도적 절차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무슨 뚱딴지 거국내각 추천일까. 중견학자답지 않은 법외적 발상이다. 송씨는 박대통령에 우호적인 모든 사람들을 미워한다, “친박 무리들” 혹은 “박대통령이 고른 율사들은 왜 하나같이 그 모양인가”라며 조롱 충만한 표현을 보라. 그 연장으로 현재 박통 변호라는 역사적 엄혹함 앞에 서 있는 ‘서석구 변호사 까기’가 지난 칼럼의 주류였던 것, 73세로 인생 “말년”이니 관조의 노년 식량을 먹으며 조용히 살으라는 주제. 서변호사가 “불온한 총궐기에 국가 운명을 맡기는 것은 예수님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송씨가 종교관 어쩌구 투덜대지만 송씨는 좀 너그러울 일이다. 아시다시피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랬을 것 같다, 글이야 교정 과정을 거치지만,
칼럼에는 청년 인기영합주의의 위선이 선명히 보인다, "우리 기성세대는 그저 후세대를 이해하면 족하다. 40·50대 생활전선을 뚫는 중·장년과 입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20·30대의 심정을 헤아려주면 된다. 그저 바라보고 관조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노년의 양식’이다. 필자를 포함해 박근혜와 그 세대가 할 일은 미래세대를 세습사회로 몰아넣은 치명적 실수에 용서를 비는 마음가짐이다.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독점한 자산을 베풀고 멍석을 깔아주는 아량이다“.
우리 기성세대가 청춘세대에게 “세습사회” 믈려주니 “미안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송씨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다. 오늘날 50대 이전의 기성 세대가 넘어온 그 혹독한 삶의 궤적을 복기해 보라. 前 새대로부터 물려 받은 건 아무것도 없이 아니 ‘마이너스’만 ‘차고 넘치게’ 물려받아 맨손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형성하며 중견국기를 반듯하게 건설한 세대인데- 그것을 내가 칭송하고 세계가 다 아는데- 왜 우리가 청춘세대에게 부끄럽고 미안할까.
우리 기성세대 모두 ‘너무나도 크게 수고했고’, 평등한 사회의 파라다이스는 아니지만. 번듯한 대한민국을 물려주는데, 부산물인 시회의 구조적 모순등은 청춘세대와 지금의 40대 이하들이 차근히 해결해 나가야 함은 세상의 이치. 송교수의 말씀들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들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청년들을 향한 아부다. ‘충실히’ 살았던 기성세대로서 우리는 미안함보다 자부심이 더 크다. 청춘세대도 기성세대들의 노고를 알아야 하고 자신들의 삶과 시대적 과제를 기성세대와 함께 해결하고 개척해 나가면 되겠다.
송교수는 박정권하의 힘든 경제현황을 고발하기 위하여 계량수치들을 들이대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치킨집이 3년내에 문 닫는 주된 이유는 박정권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과잉 치킨집 창업 때문이다. 이는 MB정권 때부터 지적된 일이다. 김훈의 “밥벌이”수필을 들어 밥벌이의 고달픔을 말하지만, 그 수필 1990 년대 김훈의 ‘기자시절 밤새 숙취 후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힘들어’ 징징대는 문학적 과장법. 김씨는 2003년 ‘전업 작가’로 전향하는데, 그 자체로 김씨의 ‘밥벌이’가 그럭저럭 수월하다는 의미. 20여년이 지난 지금 근래 한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은 3배 가량 올랐다, IMF 2016년 4월 기준.27195 달러, 세계적 비교로는, 美대통령 트럼프의 인식처럼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대략 20여년 전 국민소득 10000달로 수준일 때의 ‘밤새 술마시고 술 취한 고달픈’ 생활상‘을 2017년에 공감이랍시고, 피케티식으로 문학적 근거로써 들먹이는 사회학과 송교수님이다.
오늘 한국 청년들의 관건은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 “더 잘나가는 밥벌이”이다.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작년인가 명절연휴에 한국인들은 사상 최대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보도였다. 이번 설 연휴에도 비슷한 현상이 도래할 것이다. 물론 송교수가 한국인들의 ‘생존의 고달픔’을 애틋하게 근심하여 말하는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사람들의 엄살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청년 고용 문제에 대하여 ‘안정과 보수와 환경 그리고 남들도 알아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우리 기성세대 모두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다. 나도 눈여겨 보고 있다. 청년들의 불평을 살살 달래주는 것도 좋다, 청년들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돋구는 것도 다 기성세대들의 역할이다. 송씨의 시장 감각으로 요새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불황’이라는 한탄이 터져나온다지만 어느해나 자주 듣는 진부한 상투적 표현이다. 내년에도 들을 것이다, 즉 어느 시대나 어렵다. 송씨는 또 자영업자들의 부채 증가를 거론하지만, 2016년 대폭 금리인하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필자가 박정권하의 경제가 좋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
송교수의 칼럼에서 위선이 느껴진다. 우리 기성세대 할 일이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독점한 자산을 베풀고 멍석을 깔아주는 아량이다. 그렇다면 송교수 자신이 그 국립 철법통 독점 자산을 내놓으시라. 서울대 출신들도 외국 선진 대학에서 최고급 학위받고도 대학에 자리없어 헤맨다는데, 위선이 아니려면 송교수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저 “걱정된 눈빛으로’ 독점한 자산을 베풀고 멍석을 깔아주기” 바란다.
송호근교수는 왜 작금의 태극집회에 대해 그리 유감일까? 국립 철밥통 대학 사회학 교수의 비뚤어진 시각이다. 절대다수의 朴탄핵을 연호하는 시위대가 있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집단이 있음은 사회 구성원의 의견의 서술. 그것을 왜 수긍못하나. 태극기 들고 휘날리며 시위하는 것을 왜 빈정대나? 무궁화든 호돌이든 태극기든 못 들 이유가 없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연세있는 분들도 있는데, 식민 경험한 그들에게 태극기는 아마도 ‘가장 큰 의미’인데, 그들이 박탄핵 반대라는 진심을 표하는데 왜 안되나. 그들이 시민들을 이적단체로 몰아세운다고 비난이다. 한반도는 분단국가이므로 태극집회가 시위 속의 이적 단체를 상기시킴은 의미가 있다. 태극기로 촛불을 끄는 순간, 자녀가 묻히는 일은 없다. 국가는 평상을 되찾고 대한민국의 길을 가고 자녀들은 자신의 길을 가며 개척할 것이다. 청춘-. 기성세대들은 더욱 분발할 것이다.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송호근 교수의 칼럼 덕분에 서석구 변호사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며칠전 모방송국에서 서석구 변호사가 출연한다기에, 기다렸다가 직접 그의 말은 들어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저지의 막중한 임무와 과제를 껴안은 변호사로서 서씨의 언변은 논리적이었다. 그런데도 송교수는 서변호사가 늙었고 극단적 발언을 한다며 노인이라며 관조나 하라는 궤변을 부린다. 어디에서 그런 교만한 마음이 생겼을까. 이참에 덧붙히는데, 송교수가 위선적이지 않으려면, 백발로 보건대 70대인 것 같은데, 스스로 은퇴하여 관조적 삶으로 진입하시기 바란다.
태극집회와· 시니어의 사회 활동을 나무라는 국립 철밥통 사회학자의 편협한 反사회적 궤변과 위선, 기득과 매너리즘과 대세편승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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