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의 검찰 압박, 불의不義정치다
윤석열 검찰 팀, 피의자 조속 소환 수사하여 사회혼란 잠재우시오!
'천민모성母性주의 Pariamuttismus' 정경심은 '교수'가 아니다.‘정신없는geistlos’ 신흥졸학, 신흥졸부들의 범법犯法 작태를 개탄함.
불의의 시대, 제2의 해방정국? 좌우 양극화 민주주의 위기-국내 좌우 힘의 균형 상태 팽팽,차후 정치 지형이 視界 제로, 이성적 좌우 공존을 촉구함.
*서류전형, 연고주의는 기득권자들의 ‘개천 용들’ 殺傷 작전, 현대판 음서제도, 사회 구석구석에 편재한 연고주의 서류전형 선발의 폐해는 착실한 청춘들의 몫, 객관적 시험제도 부활하여 선발의 100% 공정성 살려야, 성실 청년들과 잠재적 개천 용들에게 신분유동성의 희망 주어야.
정의의 아포리아Aporia 시대다. 명색이 고등 교육자인 부부교수는 自家 밀실에서 ‘위조지폐들’을 제작하여, 순수정직해야 할 ‘20대’ 성년 대학생 자녀들은 그 위조 증명서들을 진리의 전당 '대학'에 제출하는 입시부정의 범행을 부모와 함께 자행한다. 외국에서 돌아오며, 기운을 회복한 문통은 대검찰청을 향해 "검찰 개혁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성찰해 달라"며 "특히 검찰은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수사 담당 검찰을 강력 압박했다. 검사들의 인사권을 가진 법무장관은 ‘내 마눌’ 압수수색을 '신속하게 해달라'며 전화를 걸어 담당 검사를 강력 압박했다. 여당은 이 통화 사실을 알려준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며 검찰 내부를 강력 압박한다. 28일 토요일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는 80만(?) 친문대군이 모여, 검찰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윤석렬 대검찰청장 out을 합창하며 ‘저주하며’ ‘조국 수사’를 강력 압박했다. 어용지식인은 ‘검찰, 대통령과 맞대결, 검찰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는 수사로서 현실 왜곡, 곡언아세 曲言阿世한다. 對검찰청 수사단을 향한 이 집권당의 ‘압력 알고리즘’은 대통령으로부터 촛불시민에 이르기까지 층층히 수직 하향으로 연결되어, 매 비리 사건 발생시 마다, 서로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연동되어 작동하여, 내 편의 권력 만수무강을 지향하는, ‘철통 단합’된 ‘철통 좌파카르텔 eisernes Linke-Kartel의 ’중립적 수사방해 조직‘이다. 이번 조국사태는 상장 위조, 입시부정, 위장이혼, 웅동학원비리, 사기소송, 사모펀드의 권력형 비리여부, 증거인멸 등등... ‘적폐 비리 조국 일가’의 수십가지 불법 의혹을 파헤치는 수사로서,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권력을’ 법대로 처단해 이 나라의 정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일진대, 공평과 정의의 외침男 문대통령이 앞장서서 맨 위에 서서, ‘정의’를 ‘협박’하니, ‘불의’를 조장하고 불의를 꽃피우고 있다. 불의의 봉화단장, 문대통령 때문에 마침내 대한민국이 불의의 도가니로 불의의 소돔과 고모라로 전락하는 듯하다. 이 땅에 ‘正과 ‘정의’는 애초에 부재한 실천개념인 줄을 알고는 있었으나, 작금에 ‘공평, 정의’의 무개념자들의 사생결단 ‘이기적’ 세력투쟁이 난무하여 나라가 극히 혼란스럽다,
최근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사태의 핵심인물은 정경심 여사이다. 보도되는 그의 비상非常한 행적을 보건대, 정씨는 자기제한과 자기체념을 숙명의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인급이 못되고, 술수와 요령, 눈치, 꾀를 부리기에 능한 ‘병법 여사이다. 직분인 학문보다는 이제理財 축적에 바쁜 복부인이며 ’표창장등 사문서 위조에 정통한 범법 ‘천박 모성‘이다. ‘뒤틀린’ 극렬 모성이’눈물겹다. 물질적 풍요 속에 사는 이 ‘교육자’ 여사가 상장을 위시 각종 위조범죄를 저지르는 권모술수의 근원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신흥졸학, 신흥졸부들의 ‘정신없는geistlos’ '천민행태Pariabehavior'이다. ‘정신이 깃들지 않은 전문인’, 정직해야 한다는 인간 기본 소양이 부족하고, 소명을 요하는 ‘직업 자의식‘ 부재의 결과이다. 배운 여사, 식자 정경심은 요령 좋은 ’위조 병법‘의 달인 ’교수‘ 엄마는, 자녀들을 自作 위조문서를 지참, 대학들에 제출하게 하여, ’피눈물 나는“ ‘제 새끼들을‘ ‘더불어’ 범죄에 가담시켰으니, 가문의 영광 아닌 가문의 수치인 세습 범행 꼴이 되었다. '천민 모성주의 Pariamuttismus'다. 이 ‘지식인급’이 못되는 ‘식자識者 정경심의 범행은, 하지만 수많은 교레기(교수 쓰레기들)들의 ‘재수없어’ ‘발각된’ ‘빙산의 일각’인 ‘아주 미미한 하나의 악의 깃털’에 불과할 따름일 거다.
조국 사태가 온 국민에게 심각하고 참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조교수가 정의, 공정, 평등을 특허처럼 외쳤으되, 최고의 공정성을 요하는 대학 입시부정의 ‘교육자’ 원흉들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대학 교육자들’이 마치 저자거리의 사기꾼들처럼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위법, 탈법의 범행 죄질 때문이다. 이들은 ‘정신부재 geistlos 식자들'이다. 이들은 이 땅의 사람들이라면, 높은 학력이나 높은 교양의 덕목의 필요성을 들먹일 필요없이 거의 원초적으로 ’인지하고 행할 수 있는‘ 상식적인 올바름 正에 대한 감각과 의식조차 부재하다. 이는 이들의 기본 품성과 교양과 인간성 문제이며, ’중대한‘ 직업적 소명에 관한 자의식 부재의 반영이다. 정경심여사는 ’교육자‘라는 ’지식인‘이라는 직업 자의식과 소명의식은 애초부터 부재했을 터, 기득 추구와 유지에 목매는 부박한 신흥졸부, 신흥졸학의 존재론일 뿐. 식자 부부의 잘못된 ’이성의 도구화‘에 주지주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실망할 것이고, 인간의지의 나약함을 뚫어 본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개를 다소 끄떡일 거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그의 논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1905)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모태인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추적하여,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결정론을 주창한 데 반해, 베버는 자본주의의 동력을 물질 아닌 ‘청교도적 금욕정신’에서 찾았다.
베버의 문제의식은 ‘역사상 다른 지역에서는 출현한 적이 없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가, 왜 오직 근대 서구에서만 발생한 이유’를 추적했는데, 베버의 결론은 서구 근대인들의 영리추구 행위의 근저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고귀한 윤리Die protestantische Ethik의식 즉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고 갈파하였다. 한편 베버는 근대와는 다르게 근대 이전에 존재한 ‘장사꾼들’은 아무런 윤리의식 없이 그저 영리만을 추구했는데 이들 대상인들과 금융업자들을, 베버는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로서 격하시켜 명명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이들 초창기 서양의 근대 대상인들은 청교도적 윤리관에 금욕주의Asceticism적 실천통하여 경제활동을 했으며 칼빈교의 예정설Predestination을 믿었다, 자신들은 하나님(God)의 택함Calling을 받아 ‘사후’死後 낙원의 영생이 예정豫定된 선택받은 사람들이기에 신의 소명召命을 자의식 하며. 자신들의 경제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In majorem gloriam Dei) 자기목적적이며, 윤리적으로 선善이며 나아가 의무로서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조직화하려는 금욕주의Asceticism적 노력까지 더했다, 이렇게 초창기 청교도적protestantischer 자본주의 경제행위와 금욕주의적 생활 태도는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이 형성되는 배경이 된다. 또한 그것은 천민자본주의로서 통칭되는 전통적 자본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적 전환 ethic turn 이었다. 베버는 자칫 천박Pariakapitalismus으로 타락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성정을 미리 통찰하고서, 이 연약한fargile(?) 경제질서에 금욕과 정신을 깃들게 함으로써, 물질적 탐욕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모종의 결과’를 경계하라는 의도였을까.
1917년 막스 베버가 뮌헨大에서 행한 강연에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chaft als Beruf)'이 있다. 베버는 여기서 직업의 의미, 특히 학문으로서의 직업의 의미를 다루면서, 그는 학자의 열정과 영감, 자기 절제력의 학문적 태도를 역설했다.
베버에게 학자란 "눈가리개를 하고서“ 수천년 내려온 고대 필사본의 구절을 판독해 내는 학문 활동에 일생의 운명을 거는 사람들이다, 이 ”악마“같은 ‘학문’을 감당하려는 사람은 열정만 가지고는 안되고 능력도 요구한단다. Weber에게 학문은 직업이다. 즉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다. 직업으로서의 학자는 전문적인 지적 능력을 갖춘 과학자로서 잔문적인 연구와 전문적 교육을 수행하여 세계와 인간의 삶과 행위 그리고 사회관계와 사회질서에 적합한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전수한다.
베버의 직업Beruf이란 거의 신성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서양에서는 ‘직업’을 말할 때 신의 부름Calling을 뜻하는 소명(vocation)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개인의 직업Beruf이란 신이 자신을 앞으로 불러내어 내린 명령으로서 직업이야말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 책임적으로 행위하는 근대인들에게 개인적 삶의 이상과 사회적 요구를 결합시킬 수 있는 기회와 장을 제공해 준다. 분화되고 전문화된 ‘학문 직업인’으로서의 학자의 인격은 절제와 헌신을 요구한다. 베버의 학문이란 실로 자기 헌신을 요한다, 학문은 예술, 자연, 신, 또는 행복에 이르는 길도 아니며, 세계의 의미나 가치를 비춰주는 등불도 아니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길잡이도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과학의 규칙, 논리, 방법에 골몰하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다. 베버가 말하는 학자는 그러므로 확고한 내적 소명의식과 열정 그리고 엄격한 자기제한과 자기체념을 가지고 직업적 요구에 헌신해야 하며, 또한 바로 거기에서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한다.
필자가 이들 조,정 부부가 ‘정신이 없는geistlos’는 ‘신흥졸학’이라고 할 때, 필자가 이들 조,정 부부가 ‘정신이 없는geistlos’는 ‘신흥졸부’라고 말할 때, 이들이 직업Beruf으로서의 ‘학문’ 종사자‘들인 두 부부는 베버가 내세운 두가지 포인트를 정확히 배신했다. 즉 많이 배우고 많이 독서한 식자들이건만, ‘직업으로서의 학자’에게 요구되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안보인다는 점이다. 그렇지않고서야 우리는 自家에서 꾸부정하게 엎드려’ 다양한 사문서를 위조하며, 사학비리, 사모펀드 수사에서 불거지는 갖가지 수법의 비리와 부패, 위법 탈법을 자행하는 ‘건장한’ 식자 부부의 범죄적 이익추구의 일단을 이해할 수 없다. 일확천금에 눈이 어두운 “자기 절제”없는 천민자본주의와 천민 졸학들의 양태란 말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시민들의 정부正富추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韓사회가 슬픈 것은, 이 비리와 부패 ‘현장’이 이들 부부만의 ‘유일’ 현상은 아니고, ‘숨겨진’ ‘수많은’ 비리와 범법 뭉치의 한 조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경험적’ 추론 때문이다, 전인격적이고 보편적인 교육과 교양, 규범적인 사회적 가치가 기득권자들의 ‘사적 이익’ 앞에서는 쉬이 무릎 꿇는다. ‘내 새끼들’의 명망대 입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韓 識者들, 21세기 정경심 여사의 범법 행위는 한국 천민모성Parianuttismus의 ‘재수없어 들통난’ 하나의 사례에 볼과할 거다. .
정씨는 보통 어머니들과는 다르다. 한국인이라면 韓사회의 지배적인 교육열을 ‘과하다만’ 그러저럭 용인한다. 그러나 정씨의 위조행위는 기꺼이 헌신과 뒷바라지로 ‘자녀의 성공을 기원하는’ 건강한 욕망‘의 표현인 엄마들의 치맛바람인 ’교육 모성애‘를 넘었다, 정여사는 ’모 대학 입학‘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 병법을 가리지 않고 ’범법‘을 자행했다. ’우연히‘ 남편의 감투 쓰기 과정에서 그 범행이 발각되었을 뿐, 아니었다면 조국교수는 정의의 사도로서 널리 숭앙받았을 것이고 그 안사람 역시 그 후광을 향유했을 것이다. 정여사는 내 자식의 “피눈물”만 살피느라고 모르겠지만, 다른 수많은 청년들의 귀중한 ’기회의 창‘을 부수고 횡령하는 ’惡‘의 기득권자이다. 자녀들까지 ‘범행 공모’에 입회시켰으니 삐뚤어진 모성이다.
필자는 한국의 모든 학자들이 베버가 요구하는 ‘투철한 엄격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추라‘는 기대는 없다. 그러나 서양의 초등학생들 보다도 못한 韓 대학교수부부의 어처구니 없는 범법행태를 보니 씁쓸하여, 그래도 명색이 대학교수라면 응당한 ’최소한의‘ 기본이 안보이길래 學人들의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막스 베버를 잠시 소환했을 뿐이다.
메멘토모리 Memento mori!는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이 라틴어 경구를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 2014년 9월 16에 조국 교수가 박통에게 퍼부은 충고이다. 그 사이 참 애꿎은 정치적 변란이 발발했다. 조교수의 저 저주서린 경구는 그대로 ‘섬뜩하게’ 실현되어, 그 대상이었던 여성 대통령은 지금 감옥살이 중이다. 문자 그대로 최고 ‘권력의 죽음’이었다.
2016년 朴탄핵시 Herr Professor 조국이 발설한 각종 말들은 살벌했다. 교수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잔혹성’을 품은 그 언변들에 나는 내심 놀랐었다. 그런데 지금 또 놀란다. 왜? 당시 조교수의 말들이 佛家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처럼 비수가 되어 되돌아 와 조 교수의 가슴과 등과 인생을 “후벼파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 2년 반만에 자신이 드높이 쏘아 날린 수많은 독화살 언어들이, 공중에서 원혼처럼 떠돌다가 최근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와 조교수 자신의 등을 향해서 내려 꽃힐 줄이야 과연 神들도 짐작이나 했겠는가...빈번하게 일어나는 역설적 인생살이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듯, 그토록 신망받던 교수 나으리의 ‘드높은 권위’가 이토록 빨리 무너지는 중이다. 조씨는 ‘창창한’ 교수 시절, 권력 창창한 박통에게 메멘토모리를 환기시키며 권력 죽음을 경고했었던 본인을 기억할까.
삼성 포함 韓재벌들은 ‘도둑의 우두머리들’이고, ‘물에 빠진 개는 구해주면 안돼’고 ‘더 두들겨 패라’며 말리고, ‘두손 모아 싹싹빌며 용서 구하는 파리는 거짓이니 그 파리놈을 관용해서는 안된다고 ’선동 당하기 쉬운 냄비 근성‘ 우리 가엾은 5000만 韓국민들을 ’계몽했다‘. 고작 2년 반 前에 조교수의 ’육참골단‘은 얼마나 혹독한 뜻이며, 용렬한 기득 교수들은 ’혼용무도‘의 알레고리로서 박통을 맘껏 깔보며 조롱했던가. 박통을 내리치던 조교수의 길로틴 그 칼날은 이제는 자신의 전체 인생을 향하여 내리칠 듯 벼르고 있고, 촛불에 의해 옹위된 2017년 5월에 시작된 조국 교수의 현 권력은, 요령 ’너무‘ 좋은 병법 사모님 때문에, 무대 뒤에서 광대가 메멘토모리 Memento mori!를 조씨를 향하여 나직히 속삭이는 듯 하다. 앞으로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視界 제로이다. 만일 조국 사태가 ’정상적으로‘ 올바르게 수사된다면, 기실 이 사태는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것이니 문재인 정권의 여러 사람이 관련 확대, 구속될지 모른다, 그 범위는 누구에게까지 이를까? 이참에 권불십년이란 옛 경구는 오히려 사치처럼 들린다.
2015년 조국교수는 ‘정의’ 강연에서 한국사회의 ”정의 수준은 나아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정의 열풍’이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하였다. 오늘 조교수의 ‘조적조’ 위선을 보면, 그사이 한국사회 입시제도는 ‘정의로운’ 법과 제도로 변화되었으나, 조씨 일가는 쉽게도 마치 위조지폐처럼 위조 표창장 만들었으니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셈이 된다. 말하자면 제도 변화를 가져왔으되, 정의롭지 못한 공정하지 못한 심정을 지닌, 양식 없고 교양 없는 識者들에 의해, ‘제도’도 꿀먹었고, ‘정의’도 더불어 추풍 낙엽된 신세이다. 제도남용이란 말이다. 결국 ‘정의’는 법과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정의로운 시민성의 문제인 것으로도 드러났다, 즉 공정사회는 정의로운 제도와 정의로운 시민, 둘 다를 요구한다는 진실 말이다. 조국사태는 ’정의로운 시민‘ 없는 정의의 제도화는 사상누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국사태는 조국교수의 자녀 입시특혜 의혹에서 출발하였고 그것을 수사하다 보니, 웅동학원과 사모펀드 비리, 조국게이트로 확장되어, 그 기만의 술수가 발각되어 5천만 국민들이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나는 단언한다.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입시부정’·‘공기관 특혜 취업’ 병역 비리‘ 등등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비리는 첩첩산중일 것으로 추정한다. 시민이 깨어있는 Korea이라면, ‘정직한 국민’이 잘 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이번 조씨일가의 입시부정 사태를 계기로 입시, 공기업·공기관 취업, 병역 관련해 총체적인 (재)수사를 벌이는 일이다. 수사는 ‘추악’한 ‘거짓말 공화국’ 대한민국의 공직자 비리들을 대량 폭로할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재수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 땅에 청춘들 물먹이는 ‘3대 비리’인 ‘입시부정’·‘공기관 특혜 취업’ ‘병역 비리‘는 꽁꽁 묻히고, 불의와 부패의 한국사회는 비리를 자양분 삼이 계속 연명될 것이다).
나경원,박원순,문재인...등등 고위직 자녀들의 입시 특헤와 취업 특혜를 파헤치는 수사를 촉구한다. (정보 늦은 내가 얼마전에서야 들어서 알게 된) 박원순 시장의 딸이 2006년 서울 미대에서 서울 법대로 전과를 했단다. 상식선에서 가늠해 볼 때, 대체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한편 국민들도 야당들도 요구하는 데, 문통 아들과 딸도 수사하란다. 얼마전 한 시민의 목소리는 현재의 ‘썩은 입시제도’를 고발한다. 서울대 재학생 왈, ‘조국의 딸 같은 경우가 언론에 틀통나서 그렇지 서울대에 널려 있고, 자신이 다니는 학과에서 정시로 입학한 학생은 본인과 또 다른 한명을 합해서 단 2명 뿐’이라고 말했단다. 그렇다면 나머지 38여명이 수시로 입학했을 텐데, 오늘 조국사태와 학생들의 증언에서 가늠해 보면, 서울대 입학생들 중에 과연 몇 명이 몇 %가 ‘공정하게’ 합격했을까? 하는 합리적 의구심이 절로 인다.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 서울대에 꼭 입학하고팠던 수많은 청춘들의 낙심과 체념들.., 韓 사회의 불공정은 끝나지 않을, 보이지 않는 限이 되어 어느 산골짜기 메아리로 남을 것인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 나라의 ’더 공정한 미래‘의 도래를 위해서는 제도 개혁과 제도 전환도 필요하다. 그러나 뿌리깊은 전통의 연고주의는 한민족의 발전을 가로막는 병폐. 한국사회의 수많은 비리와 부패의 근원이다. 현재 시행되는 각종 ’서류전형‘은 연고주의 한국 사회에서는 끝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 제도는 잠재적 ‘개천 용들’도 살상한다. 저 현대판 음서제도인 ’서류전형‘의 폐해는 고스란히 착실한 학생들과, 90% 국민들의 몫, 차라리 객관적 실력주의'메리토크라시(meritocracy)가 한 사회에 가장 적합한 제도일 터. 이런 맥락에서 중앙 시험제도, 고시제도등을 부활시켜 입시제도·인재선발에서 ‘객관성’을 보장하고, 개천 용들을 육성하여. 희망의 신분 상승 사다리를 다시 들여와라.
윤석렬 검찰 팀, 참 눈치 없다. 세상물정 모르는 천치 바보다. 저렇게 눈치코치 없는 검사님들 처음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7월 25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도 하게 되고 권력의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님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주십사 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윤석열 총장이 그렇게 ‘눈치없이’ 문통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우직함을 보인다. 눈치 모르는 이 천진난만한 검찰들이 9월 23일에는 조 법무장관 방배동 집을 압수수색 했다.
윤석렬 검찰 팀이 울 나라에 정의의 희망의 씨앗을 박을 수 있겠다는 ‘장미빛 전망’이 기대된다. 검찰은 엄정 수사, 조국사테의 전모를 파헤쳐, 발표하여 작금의 사회 혼탁을 속히 가라앉히고 국민들을 정상적인 일자리로 보내야 한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착한 힘은 악한 힘보다 강하다‘며, 꼬마 아가씨 도로시는 사악한 마녀를 쳐부수는데 그 무기란 총칼이 아니고, 한갓 "아이의 순수함“이었다. 눈치 모르는 천진함이 ‘평생 나쁜 짓만 하며 살아온“ 마녀를 ’끝내주었단다‘. ’절차에 따라서‘ ’묵묵히 일하는‘ 윤석렬 검찰 팀에 5000만 국민이 모두 일어서서 응원을 보내고 있음을 전해드린다.
한국이 비정한 사회다. 아홉살 딸이 엄마 찾아 남한행 탈북을 시도, 실패하여 강제 북송당하는 비극, 이혼 가정 5살 꼬마 남자아이는 보육원에서 끌려나와 계부에게 복부를 난타당해 살해당하고, 젊은 계모는 자신의 인생에 방해된다고 어린 의붓아들과 전 남편을 독살시키고, 자유 찾아 남한 온 탈북 모자는 서울 한 복판에서 굶어 죽어 발견된다. 이 나라 자살자는 작년에 1만3670명으로, 하루 평균 37.5명 꼴이라는 24일 통계청의 발표, 한국은 20여년간 OECD 자살 1등국이다, 산업재해로 2018년 971명 사망했는데 산재 질병 사망까지 합치면 한 해 2142명. 하루 6명꼴로 ‘생사람 잡는’ 나라이다. 업무 담당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韓 사회의 현실이 이토록 불행할진대, 서민들의 비참을 지적하여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달팽이 속도라도, 게걸음 속도이라도 기여하려는 지식인은 없다. 세력투쟁에 참가하여 ‘이익’ 단물을 빨아보려는 유기적 지식인들 밖에 없다,
문대통령은 겨우 2년 반만에 정부가 부조리와 불공정 넘치는 수구좌파 앙시앵 레짐으로 전락했는지, 패권질서와 인류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대한민국으로서는 번영과 평화, 통일, 개인적으로는 자유와 발전, 행복의 담론들이 무성해야 할 이 시대에, 앞서지는 못할 망정, 부질없이 5000만 국민 분열 싸움만 부추키는 좌파 파시즘적 선동가로 전락했는지 성찰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국민들도 2020 총선과 2022 대선에서 ‘올바른’ ‘종이돌’ ‘正의 심판’을 내릴 수 있을지, 그 선택의 결과는 국민의 몫일진대, 좌파 ‘촛불 주술’에 걸려 ‘3년째 잠자는 국민들’이니, 낙관 할 수 없다. 우매한 잠자는 국민들 곁에서, 좌파 파시즘은 꽃 필 것이다. 국민들이 깨어나라. 좌우파 경쟁과 공존의 正道를 걸어야 한다.
*이 글은 매체 보도들에 의거해 조국일가의 범법 개연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下에 쓰여졌다. 만일 조씨 일가의 무죄가 밝혀진다면 필자는 오히려 기쁠 것이다. 내심 조국부부의 ‘무고’를 ‘기다리지’ 않는 바는 아니다. 첨가하자면, 국민들이 조교수를 말로만 정의를 부르짖는다고 비난하는데, 참여 지식인의 언행의 일치가 100%이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순교자적 희생은 혼탁한 韓사회의 구성원에게는 기대될 수 없다. 약 50%라도 나는 족할 것이다. 문제는 조교수의 자녀의 서울대 인턴쉽 증서위조와 사모펀드의 권력형 비리등등에 연루된 ‘범행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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