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는 한민족의 담대한 웅비를 염원하는 비전인 ‘강대국 대한민국’ 또는 ‘뉴(새로운) 코리아’등의 슬로건을 내걸며 2025년 까지 10년간에 그 목표 달성을 구상했었다. 그 사이 나는 특히 외교, 북핵 안보, 경제, 그리고 韓사회의 악성 지표등을 위주로, 나라의 일을 예의 주시하고 면밀하게 관찰, 관측하였다. 유사이래 ‘변방 약소국’으로 존재한 한국의 ‘강대국 대한민국’의 수준을 나는 복잡하게 보지 않았다. 한국의 개인 GNI가 일본의 70-80%정도에 이르면 대한민국도 강대국 수준으로 간주해도 된다고 보았다. 학계에서는 일본은 독일과 함께 중견국middle power에 속한다, 한국도 그렇다. 미,중이 강대국great power을 넘는 슈퍼파워 super power 로 간주되니, 사실 ‘강대국’ 자리는 비어있는데, 나는 그 강대국 자리에 일, 독, 영, 프등 전통적 강대국들을 중견국이기 보다는 ‘강대국’으로 파악, 한국도 그 위치에 속하자는 ‘야망’하에, ‘강대국 대한민국’의 기획에 나섰던 것, 그 후 벌써 5년이 지났고, 내가 늘 바빠서 여기에 자주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작년 후반기부터는 일부러 짬을 내어 나의 오래된 이 ‘강대국 기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시작하게 된다. 놀랍고 기쁘게도 필자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중요한 몇가지 지표가 이미 달성되었다, 한국의 개인 GNI는 일본의 80% 이상(IMF기준 2019, 한국이 33720달러, 일본 41690), 국가 GDP도 일본의 약 1/3,5 수준( IMF 2019년. 일본 GDP는 5조2천억달러, 한국은 1조6천억달러), 세계 12권, 군사력은 세계 6강, 3050클럽의 7위이며, 올해 2021년 G7에 초대받고, D10의 멤버에 속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필자가 소망했던 2025년 보다 더 빠르게 5년이나 앞당겨 2020년도에 필자가 제시하는 ‘강대국 대한민국’의 필요조건에 도달했다. 이미 동북아에는 4강이 아니라 5강이 각축하며, 언젠간 동북아 3위도 꿈꾸어 봄 직하다. 2025년까지 국민소득 4만불 달성은 당면 목표다,
나의 ‘강대국 대한민국 기획’은 ‘한국은 ‘세계의 1등 그룹에 속하여야 한다’며 한국인을 향하여 엄중한 ‘시대사적 필연’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2050년 까지 글로벌 5강! 매직 파이브! 그것을 ‘명백한 한민족의 운명’ 이라며 ‘정치正置 선언’하여, 현금現今과 미래의 한국인들이 총단결하여 금강석으로 빛나는 나라의 형상과 내실을 굳건히 쌓고, 유지, 확장하는 진취성 속에서 담대·기백있는 삶을 영위하기를 염원하며 독려하려는. 낡은 집(앙시엥 코리아)을 허물고 새집 짓는 ‘현대 대한민국’ ‘매직 파이브’(강대국 대한민국)‘의 기획이다. 진취와 모험과 도전, 용기와 ‘K(코리아)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현대 한국인’을 기획한다. 아래에는 구한국인들은 생전에 결코 들어본 적도 상상해 본적도 없는 대담한 담대한 기적같은 개념들이 여러개 쏟아져 나올 것인 바, 현대 한국인은 이제 그런 꿈같은 개념들과 함께 한국을 세상을 세계를 살아가며 스스로의 강인한 정체성을 키워야 한다. 나의 ‘강대국 대한민국’의 기획은 ‘꿈같은 도약과 비상의 꿈을 가슴 가득 안고서’ 전진하는 비상飛上하는 현대 한국인, ‘은둔의 구한국인’을 깨어나 웅비하며 날아오르는 역동의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찬가이다. 大韓國民은 강대국의 길을 간다.
팍스 코리아나 Pax Koreana! 매직 5!-한국의 운명: ‘코리언의 세기', ‘영광의 대한민국’ 창조!
‘팍스 코리아나’=한화론(韓華論korean prosperity, 韓和론 korean harmony, 홍익인간 humanism)’, 한국(인)과 함께, 세계는 화목하고(평화롭고) 번영한다 .
韓국몽: 팍스 코리아나! 매직 5(2050까지)! 21 코리아의 세기 (The Korean Century)!
K(코리언) 프런티어! ‘현대 대한민국’은 세계전략 Korea’s Global Strategy을 생각한다,
코리아의 운명’ 매직 넘버 ‘5‘! 동북아 5강( 더 이상 새우 신세는 없다)! 글로벌 5강 (6위 아래 후퇴는 없다! 코리안 매직 단어 5개: 5·전방위·전천후·수출·혁신 (동북아 5강, 글로벌 5강, 전천후·수출주도 경제, 전방위 외교, 혁신).
후세의 한국인들에게 힘주어 전하는 가장 강렬한 선線숫자는 5, ‘코리아의 마지노선’은 ‘글로벌 5’, 글로벌 6위 혹은 7위로 떨어져셔는 안된다. ‘전진 Yes! 후퇴 No!라는 결기로, 5를 기준으로 미래에 대한민국은 4위, 3위로의 전진은 있으되, 6위의 후퇴를 거부한다’ 는 신념으로 국력을 운영해야, 서울은 뉴베파市로 만들 것, 뉴욕의 자유로움과 활기, 파리의 도시외관의 아름다움, 베를린의 내면 알찬 교양 시민들, 시민성 가득한 행복 사회, 퇴폐적고,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르져 화목 행복한 ‘글로벌 인기 매력 메트로폴리탄 서울’ 만들기.
강대국 대한민국의 길, 韓국몽: 팍스 코리아나 Pax Koreana! 매직 5(동북아 5강, 글로벌 5강, 2050까지)! 코리아의 발전단계: 고난기(5천년)→부국강병 성장기(1960~1990년대)→한국의 세기(2000년대 상반기)→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2050년부터 G5, 세계사의 주도적 위치). 21 코리아의 세기 (The Korean Century)! ‘현대 대한민국’의 세계전략 Korea’s Global Strategy, 코리언 프런티어, ‘현대 대한민국’,,,지금까지 결코 들어본 적 없는 이 모든 ‘구호들’은 지금 한국인들에게는 그저 먼 어느 나라의 천둥소리처럼 북소리처럼 몽상적으로 아득하게 울리며 귀가 윙윙하며 멍할 것이다. 어지러울 것이다. 도저히 현존의 것이 아닌 먼나라의 것 같고, 더구나 나의것 우리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간다, 이런 얼떨떨함이 정상이다, 그 느낌은, ‘매직 5’는 5000년을 변방 음지에서 살아온 한민족에게는 그저 비몽사몽 따름 일 터, ‘팍스 코리아나’라니, 장장 5천년동안이나 세계사의 소시민으로만 살아온 소박하기 그지없는 한국인에게는 너무 웅대하고 눈부신 개념. 한국인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짐은 당연한 일,
약 170여년전 한 사나이가 지금의 김세린처럼 과대망상 꿈을 밝혔다, "우리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형제애를 이룰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미합중국과 유럽합중국이 마주 서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다", “유럽대륙의 돈은 한가지여야 한다”고. 당시 사람들은 실소하던 ‘과대망상 꿈’을 꾼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자랑스런 대문호,<장발장 이야기>를 쓴 빅토르 위고이다. 모두 알다시피 그 옛날 위고의 그 과대망상은 지금 ‘유럽연합 EU’으로 실현되고 유로화의 공동화폐를 가지게 되었다. 위고의 과대망상은 프랑스의 장 모네등 후세 여러 사상가들을 자극했고, 실행을 촉구했고, 구체적인 기획과 계획이 되어 오늘날 27개국의 유럽연합은 ‘전쟁없이 평화롭고 번영하는 유럽 합중국’ 완성을 향하여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 세느강을 가로질르는 때아닌 구름 한 조각같아 보이던 꿈과 비전은 ‘멋진 신세계 하나를 건설하는 힘’으로서 충분했던 것이다.
오늘날 ‘현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Zeitgeist은 무엇일까? 한국 방문하여 안터뷰이가 된 폴 캐네디에 따르면 ‘시대정신은 동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념적 표상(ideational reresentation)과 그들이 나가야 할 지향성(intentionality)이며, 그 시대정신은 강한 규범성을 내포한다고 정의한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단기의 시대정신 대신에 항구적일 대한민국의 ’절대정신‘이란 개념이 떠오른다, 절대정신은 내부적, 그리고 대외적 주변환경의 변화에 휩쓸리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정신무장의 힘을 주는 한국인의 유구한 정신적 물질적 기둥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강대국 대한민국‘이다, 물질적 ’강대국이 된 대한민국‘은 ’강대국 정체성을 지니게 되고‘, ’강대‘국가의 성격과 위상과 역할을 유지, 수행하며, 매직 파이브로 패기 전진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닷가 바위처럼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풍랑에 끄떡없이 끝까지 그 ’존재를 유지, 번영‘하는 은근과 끈기의 강대국이 대한민국의 항구적 절대정신이란 말이다.
국제정치 학자들은 한국의 중견국을 논한다, 중견국은 힘의 분배와 ‘사실적real’ 위계질서상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 중간국, 약소국 사이에 낀 중간급 세력. 기능적으로 미중 강대국끼리 갈등시 중재외교를 자처하거나 때로는 새로운 국제적 의제를 소개하거나 만든다. 또한 한반도는 지리적 개념으로서도 소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잇는 middle power에 딱 들어맞는다, 따라서 “교량국가”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 어엿한 중견국 대한민국의 역할이다. 요약하면, 평화, 중견국, 교량국가, 선도국가, 이것이 우리가 세계가 기대하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역할이며 위상이며, 이것도 감지덕지 ‘만족해’ 한다. 코리아의 국내적· 對외적 시대정신이 ‘중견국 대한민국 유지’이다.
그런데 필자는 2015년부터 ‘강대국 코리아’를 구상하였고 그 잠정적 종결연도를 10여년이 걸리는 2025년 까지를 잡았다, 나는 그렇게 높은 기대 기준을 설정하지 않았다. 경제적 개인 GNI가 실제적 ‘강대국’인 (국제정치학적으로는 일본도 중견국의 위치, 미중은 슈퍼파워로 불리니, 이들을 중견국으로 위치시키니 국제정치학적으로는 현재 ‘강대국great power’ 위치가 공백상태인데, 필자가 이 공백의 강대국 자리에 전통의 강대국들인 영국, 일본, 독일들을 넣는 것이 객관적으로 온당해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는 지구상 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핵무기 보유로서 군사적, 그리고 국제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강대국 급’이다.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EU 27개국을 이끄는 주축국인데, 핵무기는 없지만, ‘유로화’라는 달러 다음가는 세계 2위 기축통화를 주도하고 있고, 국제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영국, 프랑스에 최소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걍대국급 국력’이다, 일본 역시 그렇다, 일본은 아직 ‘보통국가’다운 국민군은 부재하지만, 일본 GDP의 1%으로 유지되는 자위대 만으로도 ‘한국 국군’의 무력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근년에는 미국과 호주와 인도 태평양 해상 훈련에 박차를 가하며 군사의 ’실전력‘을 키우고 있고, 엔화는 위안화보다도 더 센 기축통화여서, 빚더미 일본이 ’유유하게‘ 버티는 바탕이 된다. 소프트파워를 제쳐두고라도 이런 강한 하드파워의 일본은 강대국으로 간주되어도 무방하다. 냉전기 국제질서의 ’양강 구도‘에 지나치게 익숙한 국제정치학자들이 ’이 범상치 않은 진짜 여러 강대국들‘을 ‘중견국middle power’이라는 과소평가된 ‘개념’을 부여 중) ‘강대국’ 일본에 견주어 약 70-80% 이르면 한국도 강대국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나는 그것이 아마도 2025년 쯤 달성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데 복되게도 현재 2020년 이미 한국은 그 수준을 넘었다. 군사력도 거의 대등 수준이고, 영토의 크기에 따른 인구격차는 어차피 일본을 추격할 수 없지만, 선진 강대국이면서도 영토의 크기에서 우리와 유사한 영국이나 프랑스와의 인구 격차는 크지 않다. 제4차 산업 혁명기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산업의 쌀로 불려지는 반도체 산업은 세계 선두 그룹이다. 그리고 일본을 비롯 다른 강대국들과 나란히 3050클럽에 속한다. 이런 정치, 경제, 군사, 인구, 과학기술이 최우위 수준이니 2020년 현재 우리나라를 이미 강(대)국 반열국들과 거의 대등하여 필자가 한국을 ‘동북아 5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古來의 습관상 ‘동북아 4강’에 대해 논했으니, 앞으로 2020년 부터는 ‘동북아 5강’으로 한국을 포괄해야 ‘현실 국제정치’의 힘의 반영인 보다 실제적 접근일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국민들의 정체성 형성은 물론이고, 아이디어, 이념, 나라의 향방을 ‘보다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필자가 던진 저 ‘강대국 대한민국 글로벌 5위’ ‘한국의 세기’, ‘팍스 코리아나’등은 연역의 정언적 명령 kategorischer IMPERATIV이다. 이 개념들은 시대정신이 아니다, 현대 대한민국의 절대정신Absolute Geist 绝对精神이다. 미래의 청춘 한국인들에게 걸어보는 소망이다. 5천년 모르던, 없던, ‘한국인의 위대함, 한국의 영광을 창조하자’는.
현대 대한민국은 영구히 전진하며 비상하는 힘이어야 한다, 미래에 현대 한국민의 궁극적 위대함과 영광이어야 한다. 현대 한국은 정치, 경제, 국방, 문화, 기술등 모든 측면에서 독립성을 유지, 담보할 수 있는 국가이며, 세계의 질서 형성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국가이며, 국내적 국제적 정치적 주도력을 행사하는 나라일 것이고, 근면 성실로서 새마을 운동과 근대화, 610 시민항쟁과 민주화 투쟁을 통한 한국인의 성취이며 쟁취인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 강대국화를 이루어 세계에 특히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게 민주주의와 경제부흥, 선진국에의 희망의 등불이 되는 나라이다,.
나는 감히 앞서 말한다, ‘21세기 지구에는 한 획기적인 민족이 존재할 것이다. 이 거대한 민족의 이름은 코리언이다. 이 민족은 변화와 진화를 거쳐 언젠간 문명, 인류라고 불릴 것이다’. 한국인은 동북아 역사로 보나 세계사적으로 보나 다른 강대국들처럼 과거의 위대함이나 영광의 전통은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현대 한국인은 오천년 한민족史 최초로 위대함도 영광도 오로지 ’창조해야‘ 할 막중한 역사적 임무를 띄고 있다. 이 현대 한국인은 영광과 위대함은 ‘매직 파이브’의 횃불로 인류의 희망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왜 한민족은 오천년 동안이나 변방 약소국일 수밖에 없었는가? 그건 ‘차마’ 강대국을 꿈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꿈꾸지 않는 나라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소국’이니 ‘작은산’이니 자아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주변 강국들과 경쟁할 엄두는 ‘감히’ 못내고, 일치감치 포기한 소확행인-일부에서는 조선의 이 경향을 두고서 성공적 편승외교로서 평가하기도 한다-공자가 말하는 ‘알아서 드러눕는 풀’이 되어 종속적 예속적 행동을 자초한 것이다. 이 소국은 자주적이고 능동적이며 삶을 살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해 자주 등터지는 새우 신세로 전락한다. 1941년 2차 대전 중에 미국의 루스는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그때서야 미국은 비로소 전통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면서, ‘지도국’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계하였고, 2차 대전 후 실제로 명실공히 미국은 리더국으로 부상하여 지금까지 세계를 이끌고 있다. 미래 한국인도 ‘매직 파이브’를 가슴에 품고, 나라를 국력 ‘매직 글로벌 파이브’를 향하여 매진하며, 오천년 한민족 심사를 지배했던 古來의 약소국 마인드인 ‘변경사고border thinking, 후배지後背地사고'hinterland thinking를 지양하고, 한국인인 스스로를 자부하는 코리아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가슴에 아로새겨, 세계의 물결과 당당히 마주 보며, 반가운 강대국 정체성을 생성, 배양한다면, ‘실제로 현실 강대국’ ’매직5’으로 부상한 빛나는 코리아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5위 대한민국’이라니, 언감생심, ‘5천년 무지무지 소박한’ 한국인에게는 너무 눈부신 공포의 숫자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 이웃인 일본이나 중국을 보면 한국인의 꿈과 시야는 너무 오래 정체停滯되어 있었다는 것을 당장 깨닫게 된다. 영원한 이웃 일본을 보자. 알다시피 일본은 한국보다 영토,인구, 자원에서 훨씬 더 큰 나라도 아니건만, 일본인들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거대 비전을 품고서 자기들이 중심이 되어 침략하고 활약하는 동아시아 지역을 꿈꾸어,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21세기에도 일본의 비전은 여전하여 대동아공영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금세기에는 그것이 보다 경제적인 외양으로 나타날 뿐, 일본은 동남아 등 개도국 간 원자재와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글로벌 생산라인의 구축하면서 동아시아 1등을 꿈꾸는 중이란 말이다.
또 다른 한국의 이웃이며 ‘경쟁자’인 중국의 비전에는 지배욕이 내장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는 중국몽은 2049년 중공 건국 100주년 되는 해에 ‘세계 1등’ (일본은 동아시아 1등의 꿈)을 다짐하며 이웃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며 백신을 제공하며 중화경제권을 형성하고, 일대일로 one belt one road를 통해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심지어 유럽까지 넘보며 西進중이다.
이런 저돌적인 야심찬 이웃국가들 틈새에서 한민족은 왜 일본이나 중국의 흉내조차 내려 하지 않고, 쥐뿔도 없으면서 일본을 왜X이라 비웃고, 대중적으로 ‘소중화’에 도취하여 ‘작은 중국인(소중화人?)’ 행세에 포만한 세월을 보냈을까. 이런 정체된 한민족에게는 아무리 긴 역사를 자부하더라도, ‘역사가 없다’, 서양의 저명한 역사가 토인비나 국제정치학자들의 눈에는 ‘놀라운’ ‘너무 오랜’ ‘정체停滯’일 뿐이고, 국가의 운명이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신세인 종속이 숙명이라고 평가받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저 한인들은 구舊한국인이란 거다. 이제 21세기 새로이 싱그럽게 태어난 현대new, modern 한국인은 남녀노소가 패기만만 진취·도전 충만하며 자신과 사회와 세계와 기꺼이 응대하며 전진하는 호랑이와 독수리와 거북이와 곰과 한우韓牛와 (돌)고래의 본성과 기백을 지닌 멋진 야생마들이다. 우리는 오늘 이 패기만만thimos 신한국인의 갈 길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필자가 ‘팍스 코리아나’라며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사’에 주역이 되자’고 한다면, ‘글로벌 5위 대한민국’은 언감생심, ‘5천년 무지무지 소확행’ 한국인에게는 너무 눈부신 ‘환상’의 숫자가 아닐까. 전체 한국인을 포함 이 세상 모두가 코웃음을 치며 무슨 과대망상이냐고 할 것이다. 한국인 누구라도 아마도 젊은 2030들도 " 대체 그것이 가능하기나 합니까?"라며 냉소할 것이다.
반면, 과거 제국의 후예 젊은이들 같으면 다를 것이다, 아마도 눈빛을 반짝이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까요?"라고 ‘그 길’을 물으며 당장 ‘가능성과 달성의 방법론’에 대해 토론을 벌일 것이다. 약소국과 강대국 역사의 경험 유무와 그로인한 상상력 범위의 차이다.
하지만 들어 보라, 명망있는 외교관 키신저박사는 인간은 그가 이룬 성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짊어지는 과업에 의해서 신화가 된다고 했다, 요즘 우리 한국인들은 산업화 민주화, 3050 이운 그 성취를 엄청 자랑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신화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한다. ‘글로벌 매직 파이브’같은 눈부신 숫자는 마치 반지의 ‘제왕만이 끼는‘ 반지인 듯, 들어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상상도 안되는 ‘남의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21세기는 구old한국인들의 약소성과 변방성을 깨고, 애벌레의 기간이 너무 길었다며 한탄은 말고 화려한 나비로 환골탈태한 한국인은 담대한 길을 가려 한다. 한국인들의 생각 단초의 전환과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모두冒頭에서 ‘생소한’ 개념들을 여러개 나열했는데, 아래에서 그것들을 부연 서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미래 ‘매직 파이브 한국인들’의 ‘팍스 코리아나’를 건설하려 한다.
1. ‘현대 한국인’ ‘현대 대한민국’의 기획’-구(앙시엥) 코리아는 즐거운 ‘추억’이 된다.
낡은 집(앙시엥 코리아)을 허물고 새집 짓는 현대성의 기획(강대국 대한민국, 매직 파이브의 기획)은 ‘21 Korea 세계 시대’이다.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 21 코리아의 세기 (21 The Korean Century), 21 코리아의 해양 세기 ‘매직 5(파이브)’는 ‘현대 코리아의 운명’.
‘현대 대한민국modernes Korea’은 한국인의 운명이다. 10여년전 2010년부터 New Korea의 물결은 시작되었다. 한과눈물슬픔에 찌들어 한탄 비탄 일삼던 5000년 구한국인들은 2010년 부터 ‘인생의 양지’ 쪽으로 초대되었고, 내외부의 여러 자극에 대항해서도 쉽게 비탄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강인한 한국인의 마음이 형성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의 현실적약점에 비탄하며 울며불며 상처와 눈물 타령하기 보다는 어느새 자신의 조그만 장점, 행복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랑하며 심지어 심심산골 충청도 할머니들도 자신들의 ‘우아한 행복’을 자랑하는 밝은 신한국인이 탄생하였다. ‘노오력’을 비웃고 인간관계의 상처타령으로 휠링, 위로 콘서트가 급필요했던 old청년들. 지금은 ‘돈 벌겠다’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큰 적극적 노력하며 성실등 건전한 가치들을 수용하며 경제적 자립도 꿈꾸는 씩씩한 젊음들이다.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대해 긍정적 마인드를 지이기 시작한 ‘현대 한국인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그 존재의 싹이 자랐던 것.
강인한 새로운 한국인들이 현대한국인 New Korean으로 살아가는 순간부터 New Korea는 도래했다. 현대 대한민국에는 현대 한국인이 삶을 영위하는 나라이다. 2010년 까지 활개치던 과거의 정체되어 은둔하던 옹졸한 협소한 ‘역사적 한국인’은 역사책 속에서 깊숙히 박제되어라. ‘신운명’의 ‘현대 한국인·현대 대한민국’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역동하는 활기찬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와 세계를 살고 있다. 21세기 오늘날 ‘현대 대한민국modernes Korea’에 사는 21세기 새로운 ‘현대 한국인이 사는 새로운 현대 한국인들은 2010년 까지 5000여년간 한반도에 살았던 고래의 갈라파고스 한국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질을 지닌 ‘내적 잠재된 역량을 맘껏 발휘하는 진정 한국인다운 도전하는 저력의 한국인’이다.
이 현대 한국인은 21세기를 맞아, 그것을 자신의 세기로 만들고픈 의욕Ehrgeiz에 가득찬 종족이다. ‘세계 1등’이나 ‘‘코리아 세기’를 향해 전진하는 이 새로운 현대한국인은 역사적 한국인들이 5000년 동안 살았던 그늘진 변방지역을 박차고 일어나, 세계의 중심 무대에 등장하려 한다. 세계사의 필자로서 共저자로서 활약하려 한다, 진취적인 ‘코리언 패기Thimos’로서 ‘도전하는 ’현대 한국인’은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는 ‘한국의 뉴프런티어들’이다. 가슴 속엔 인권과 한민족의 홍익인간의 이념인 휴머니즘을 품고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자’며 이 시대 세계사의 중심center shift으로 이동하자며 ‘하면 된다’며 새로운 전진을 향해 운동화 끈을 매기를 주저치 않는다.
우리가 세계 경제적 10위권이고, 3050클럽의 회원이므로,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주변부 국가가 아니다. 2010년 G20 서울회의 때 우리가 세계질서의 형성에 참여했고, 2021년 G7 런던 정상회의에도 초대받은, ‘반주변부’를 넘은 세계의 중심부的 국가이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가 1775년 “풍요로움으로 인해 미국은 강력한 제국이 될 것이다”고 예언했듯이, 개척기 시대 미국에 도착한 유럽인은 처음에는 관점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자그맣게’ 하다가 점차 자신의 스케일을 넓히고, 이전에는 300킬로미터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지만, 드넓은 미국에서는 가까운 거리처럼 여겨졌듯이, 현대한국인(new modern korean:nmk)은 스스로에게 ‘현대한국’과 ‘현대 한국인 다움typisch modernkoreanisch’의 정체성과 자화상을 새로이 반듯하게 세워, 이전의 ‘새우 한국인’이거나 ‘주변부’ 혹은 ’반주변부 한국’ 혹은 후배지 사고로는 생각 못했던 꿈과 희망 그리고 성취의 목표를 세우고 한국인의 이상과 이념을 펼치며 전진을 준비 중이다. 그리하여 ‘풍요로움으로 인해 한국은 강력한 매직 파이브가 될 것이다’.
세계로 나아간 nmk(New modern Korea)는 전통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고래의 한민족의 이념인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세상에 알리고 실천하려 한다. 인류 보편적 이념인 ‘인권’과 ‘휴머니즘’인 홍익인간은 세계의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등 서구가 제시하는 인류보편의 개념들과 양립, 부합하므로. 전 인류로부터 환영받는 이념이다. nmk는 Marginalist주변 주의자를 벗어난 Centrist이며 그리스의 지덕체를 갖춘 전인적 인간형을 지향하며, 파우스트적 인식욕과 이상국가를 꿈꾼다. nmk는 생활에 필요한 부지런한 정보습득을 즐기는 ‘상식인’을 넘어서는 ‘차분한’ ‘교양인generalist’이어야 하고, 직업적으로는 ‘전문가’ ‘장인’이면서, 대다수 시민들이 대체로 열렬한 교양주의여야 저급 천박 한국인을 넘는 고급한 한국인, 고급문화가 뿌리 내려, 현대한국인 전체가 교양 시민이며 교양 국민으로서 세상의 존경을 획득한다.
舊한국인의 소원은 전쟁 없고, 평화롭고, 번영하며 이웃과 서로 나누며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 사회이다. 사람들이 북유럽을 한국 미래의 모범으로 삼는다. 그런데 진취적이며 ‘세계와 친구하는’ 현대 현대한국인이 구상하는 미래의 21세기는 보다 도전적ehrgeizig어서, ‘한국의 세기’, 매직 파이브, 팍스 코리아나등등이 한국인의 꿈이 된다. nmk(New modern Korea)는 ‘세상의 선한 리더good leader’(자신의 한계 속에서 조금 부담스럽지만 ‘받기 to receive’ 보다, 더 많이 공여하는 베푸는 to give에 관심을 보이는)가 된다.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애호하는 상징 동물인 호랑이에 비유하자면, 21세기는 ‘nmk ’좋은‘ 호랑이’가 새롭게 포효하는 세기century’ 가 될 것이다. 우중충 구석진 ‘변방 사고와 변방살이’를 버리고, 비교경쟁시기질투술수의 ‘며루치 옹졸 심뽀’를 내다버리고, 각자의 삶이 처량하고 각박하기 그지없는 ‘버티기’ 타령 버리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삶을 누릴 줄 알아야 하고, ‘구정물’ 낡은 집(앙시엥 코리아)을 허물고, 새집 짓는 현대성의 기획(글로벌 파이브 대한민국의 강대국의 기획)을 완료하는 ‘Korea의 세계 시대’이다.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 21 코리아의 세기 (21 The Korean Century), ‘매직 5(파이브)’는 ‘현대 코리아의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현대 한국인’의 ‘현대 대한민국의 기획’은 한국인의 주인의식을 요구한다. ‘21세기 지구가 우리를 부른다’는 신념으로 세상에 나아가 가볍고 경쾌하게 인사하며 세계와 악수해야 한다. nmk는 지구인이 어울려 사는 지구인들의 이야기인 ‘세계사의 주역’이 될 준비를 하며 활약할 것이라는 주인의식,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가 배운 근대 세계사란 오리엔탈리즘이다, 그것은 유럽의 세계사였고, 그 외 미국과 일본이 포함된다. 오늘날 저 거대한 중국조차도 세계사의 최근대사에서는 조연으로 전락했었다. 경제사, 문화사, 사상사, 문학등 다른 분야에서도 미국을 포함 주로 서구인들이 주역이다. 그동안 유럽, 서구 중심의 세계사 서술방법이나 역사 인식에 대해 무비판적 수용이었으니 말하자면 한국은 오리엔탈리즘인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주변부적 인식의 관성은 이 세계를 “우리의 것”이 아닌 ‘저 중심부들의 것‘이므로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넘겨주어‘, ’그들만의 리그‘를 벌여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도 못했다. 자연스레 주변부 한국인은 세계에 대한 주체의식이 없었으며.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변경사고와 후배지後背地사고hinterland thiking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 힌국인들은 항상 남이 만드는 세계와 그 세계의 객체로서 수동적으로 산다. 중심부 국가들을 마치 지구의 주인들인냥 그들의 우월권을 그들의 자연법적 권리인 듯 여겼다,
후후발 대한민국은 그동안의 추격자 위치에서 세계 질서 형성에 참여하고, 된다면 선도자로서 세계사를 쓰는 집필자가 되자. 한국은 경제력, 경쟁력, 기술력, 군사력등 주요 지표에서 이미 세계 10위권 안팎이며, ‘고래들’이 넘실대는 동북아에서조차 强大고래들을 ‘최소’ 한방 먹일 수 있는 (돌)고래의 ‘힘force, power’을 갖추었으며 2021년 현재 글로벌 ‘멋진’ 3050의 7강 국력이다. 하지만 변방사고와 후배지 사고에 갇힌 한국은 아직도 세계와 마주하여 주체 아닌 객체의 정체성이니, 필자의 ‘코리아도 세계의 중심이 되자‘같은 ’도전적인 의욕Ehrgeiz‘은 상상조차 어렵다.
민주화, 산업화, 한류, 세계적 거대 기업 등 우리의 역량은 쌓여가고 있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할 혁신, 세계 표준, 평화의 달성 등 우리가 세계사의 장을 채워나가야 한다. 이 세계는 한국인들이 主활동 무대라는 인식도 용기도 가져야 하겠다. 지금껏 서구가 세계사를 써 왔다면, 격상된 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한국인도 이제는 집필하여 몇페이지를 채울 일이다. 자 이제 직접 필을 들어 세계사는 우리의 역사가 되게 하자.
허쉬만의 후후발 산업 국가인 한국이 출발이 늦은 건 핸디캡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도약도 가능하여 때론 그 늦움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정상 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기존의 체계에 벗어난 새로운 관점이 등장하여 과학혁명적으로 비약발전한다고 본다, 이 새로운 관점을 패러다임으로 부르는데, 지금 세계는 기술 혁신으로 정치, 사회, 문화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패러다임 시프트의 한가운데 서 있고, 이제 세계의 주인의식을 갖춘 현대한국인은 한많은 구한국인인 앙시엥 코리아의 은둔과 소극성의 국민성을 벗고 변화에 대응 혹은 주도할 태세를 갖춘 new Korea의 세계 시대’를 열어 간다. 21세기 패러다임 시프트는 한국인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도 인류도 당면하여 고통받는 2021년 팬데믹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딱 100년전 1921년 3월 4일 열린 취임식에서 워런 하딩 미국 29대 대통령의 구호는 ‘정상화(normalcy)로의 복귀’였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에 지친 미국인들의 희구였기 때문.당시 미국인들은 일상의 정상화만 돌아온다 해도 다행이라 생각.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담대한 새로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1913년부터 본격 시작된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모험에 찬 포디즘인 ‘현대(모던) 경제패러다임의 역동성으로 들어 갔고, 미국민들이 희망하던 ’정상화‘를 넘어 혁신 넘친 1920년대를 이루어 이른바 미국의 '포효의 20년대를 불러 왔다.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혁신 대한민국‘은 ’일상화의 복귀‘를 넘어 어떤 멋진 ’포효의 2020년대 코리아‘로 거듭날지 필자는 궁금해 진다.
현대 한국인은 이웃 아시아 국가들을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통해 ‘연결되며’ ‘상호윈윈’하려는 의지를 가진다,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도 마쳤다, 그것을 위해서 우선 틀frame을 세우고 설계를 시작하게 된다. 자유로운 한반도에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한국인들이”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창조하는 ‘코리아의 새집 짓기’ 기획은,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구나!”라고 파우스트가 경탄할 새로운 나라일 것이다.
2. ‘21 코리아의 세기 The Korean Century’!
코리아의 세기 (The Korean Century)라니, 꿈만 같은 언어로 들린다, ‘THE 21TH CENTURY IS THE KOREAN CENTURY’라니 정녕 초현실적으로 들린다. 고매하신 한국인은 그러나 ‘화들짝’ 마시라, 필자의 ‘코리아의 세기’는 한국이 지금의 미국처럼 전세계를 누비며 1등 패권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의 국력으로 볼 떼, 도저히 미국같은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5위’는 현대한국의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이며, 대한민국이 도달가능한 최고수준maximum일 것 같다, 한민족 5000년 사상 최고의 수준 말이다. 그리하여 ‘매직 파이브’인 것이다.
‘코리아의 세기’란, ‘코리아의 빛나는 금강석 시대’를 의미한다. ‘코리아가 빛나는 시대’란 승승장구하는 코리아를 일컫는다. 답보나 정체, 나태, 쇠락의 코리아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해방후 역동적으로 살아왔던 그 방식대로 변함없는 열정과 근면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재능을 꽃피워서, 천년만년 자광自光하는 금강석 국가이며, 내부적 번영은 물론 나아가 인류 공영에 기여하며 마침내 ‘세계 속 ’명망국가reputation state korea‘이며 명실공히 ’강대국 대한민국great power’이다 (지금은 강국strong state이란 규정이 적절함). 20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괜찮은‘ ’그 나라‘는 이제 세계 속의 한자리 숫자 그것도 ’매직 파이브‘로서 성장, 이때 시대는 바야흐로 진정한 ’코리아의 세기‘이며 ’팍스 코리아’의 승리‘이며 ’매직 코리아‘ 이다.
사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인이 주목한 역동하는 ‘한국의 세기’였다, 20세기 후반부와 21세기 two decades 20년, 도합 약 70여년은 전진하는 한국의 세기였다. 코리아의 성장과 발전은 여기에 구태여 숫자를 나열할 필요없이 괄목할만 했다. 2020년 미국 대통령들 3명 바이든-, 트럼프-, 오바마대통령도 한국의 성장을 크게 칭송하였는데, 그것이 마치 어른이 꼬마에게 ‘성적 좋아졌네’라며 머리 쓰다듬는 느낌을 주더라는 것, 하지만 21세기 세 번째 디케이드부터는 당당한 ‘成人’ 대한민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협력하고 경쟁하는 ‘成人 코리아’가 되자. 그에 2019년부터 ‘3050코리아’로서 합당했고, 나아가 우리는 저력’ ‘현대 한국인’의 강렬한 표상으로서 ‘매직 5’를 기획한다.
영토, 군사력, 경제, 인구. 기술과학의 총합으로서 가늠하는 하드파워에서 한국은 특히 영토와 인구, GDP면에서 미중러, 강대국들을 도저히 근접 추격할 수 없다, 게다가 지정학적 문제까지 겹쳐 한국이 세계 슈퍼파워가 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훌륭한 배양조건’의 ‘결핍’이 있다. 그렇더라도 예외는 있는데, 17~18세기 독일이 통일하기 전 네덜란드가 패권국가였는데, 영토의 대부분이 해수면 아랫니며 소규모였어도, 넓은 해양을 이용할 수 있던 과학, 경제 지식을 통해 패권국가가 되고,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효시를 열었다. ‘세계체제론’으로 잘 알려진 임마누엘 윌러스틴은 자신의 저서 <근대 세계-체제 Modern World-System>에서 패권국가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세계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라고 정의하면서 '세계 역사상 3대 패권국가'로 20세기의 미국, 19세기 영국, 17세기 네덜란드를 꼽았다. 네덜란드에 비하면 영토의 크기나 인구 면에서 훨씬 ‘더 원대하고’ 드넓은 해양 또한 보유하였으니, 언젠가 아니 21세기에 ‘코리아의 세기’를 ‘매직 5’를 꿈꾼들 겸손함일까.
패기전진하는 ‘코리아의 세기’의 현대 한국이 ‘매직 파이브’를 향하여 선택하는 전략적 대안은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갖춘 ‘스마트파워 국가’이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의 명예 교수인 조지프 나이 교수가 1980년대 말 창안하고 발전시킨 ‘소프트파워’는 오늘날 일국의 ‘힘’을 평가시 하드파워 못지않은 주요 파워요소로서 자리 잡았다. 소프트파워란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으며 매력 있는 국가로서 평가받는 힘을 말하는데, soft power는 일국의 국제적 공헌과 관련이 있다, 일국이 매력국가이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인권, 자유, 개방, 시민사회, 국내적 통합등이 발달된 민주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갖춘 정체政體하에, 문화, 교육 수준, 학문의 발달과 영향력이 있어야겠고, 개발원조등 국제사회의 번영에 기여하는 공공재의 기여도등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그리고 네트워크화된 외교를 얼마나 발달했는가 등이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종합하는 스마트 파워는 외부로부터 위협이나 위험이 닥쳤을 때, 그 국가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 처리하느냐, 정책 결정을 얼마나 신속히 능률적으로 해내느냐, 혹은 이미 만든 정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행하느냐등이 군사력, 경제력과 문화력이 뒷받침되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는 나라가 스마트 파워 국가이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2007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권력의 이동power shift 현상을 지적했다 즉 ‘국제무대에서 권력은 군사력과 경제력 아이디어 등 3중 체스판과 같아서 오늘날 권력은 분산되어 ‘더 이상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거대 고릴라는 없으며, 이제 하드 파워로부터 문화·이념·외교 등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체스판인 군사, 경제는 전통적으로 다 아는 ’힘‘이지만, 세 번째 체스판 ’소프트 파워'는 아이디어의 힘, 효과적인 외교의 힘, 민주주의, 그리고 일국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매력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주요한 권력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에도 올해 2021년 연초에도 나이교수는 한국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코로나19 모범적 대응으로 소프트파워 발휘’했다며, 그 개념 창안자가 한국의 ’소프트파워 상승‘을 인정한 것이다. 르몽드지와 블룸버그는 오스카상 수상과 빌보드 1위 가수들을 염두에 두며 2020년을 한국의 문화의 황금기라며 칭송했다, 우리나라는 해방후 오랫동안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룰을 잘 지키며 협력하여 국제사회와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근년에 이웃 대국 중국이 국제 규범과 보편적 가치 지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프트파워력에 기대어 한국은 그러므로 우리는 소위 중국의 국제사회와의 사회화(socialization)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중일은 동북아 이웃 국가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자각, 형성하면서 중국을 자유의 품으로 인도하는데 성공하는, 나이 교수가 평가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키워 봄 직 한다.
이 새로이 발견된 ‘힘’인 소프트파워에 대해 현실주의자들의 ‘경시’는 항시적이다. 동맹이론가로서 국제정치에서 힘의 균형보다는 위협의 균형을 더 강조하는 현실주의자 스티븐 월트Stephen Walt는 오래전 한국 방문時, ‘나는 나이교수와 하버드 동료이지만 그의 소프트 파워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세적 현실주의자‘답게 저명한 자유주의 이론가를 ’소프트‘하게 비꼬았다고 할까. 하지만 1980년대 탄생한 이 “소프트 파워“는 그 사이에 학계나 국제정치적 현실에서나 공고히 자리잡은 하나의 주요 ’권력‘ 설명변수로서의 ’파워‘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한국은 이 소프트파워력도 키워야 하겠다.
‘우리는 이 세계 전체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지금 착수해야합니다. 세계의 모든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이 나라의 명백한 의무입니다. 군비에 1 달러를 쓸 때마다 최소한 1 달러는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위 글은 1941년 루스가 발표한 “미국의 세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루스는 2차 대전에 참여하려는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었을 뿐 만 아니라, “인류의 재능있는 공복, 선한 사마리아의 사람”으로서 ‘미국의 세기’를 열자고 열변한다. ‘세계의 모든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이 나라의 명백한 의무입니다. 군비에 1 달러를 쓸 때마다 최소한 1 달러는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라는 ‘이 거창한 ’정신’은 도대체 ‘미국’이 아니면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인류애와 기독교적 박애의 정신이 녹아 있다, ‘바로 우리가’ ‘군비에 1 달러를 쓸 때마다 최소한 1 달러는 다른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시다’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던 저변에는, 미국이 진정 물질적 도덕적 파워를 내장하였던 덕분이었던 것이고,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초반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군사력과 루스의 저 ‘감동적인’ 박애정신이 세계 인민들의 도덕적 동의를 유발하였고, 미국의 자유와 정의를 지구인에게 투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필자도 감히 ‘한국의 세기’를 말하지만, 미국인 루스처럼 저 감동적인 ‘사마리아인 한국인의 박애’를 권유할 수도 약속할 수도 없다, 한국은 그럴 도덕적 자격이나 의도,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능력이 태부족하다. 대한민국의 ‘21 코리아의 세기’는 과연 의지보다도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에게는 많은 것이 충분하지 않다. 자칫 한국의 모든 꿈이 실패 할 수도 있다.
이런 하드파워의 부족한 현실을 소프트파워와 진취적 도전정신으로 메꿀 수 있을까. 현실적 국제 무대에서의 ‘파워 순위’인 3050의 G7은 우리에게 ‘세계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치’를 자각시킨다, 그것은 속도감있게 성공적으로 달려온 대한민국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예시한다, 그것을 믿고 한국인의 이상 ‘홍익인간’을 세상에 펼치자. 한국은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인처럼 받는 것 to receive 보다 주는 것 to give이 더 축복이라고 믿으며 한국은 자유와 정의의 이념의 강력한 하우스power house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한국인은 세계 역동의 중심 center of dynamics이며, 활기와 열정.기쁨으로 인간의 진보에 헌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부름을 받았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원대한 목표로서 노력하는 승리의 목적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홍익인간의 세계. 이 정신으로 가장 멀고 높고 넓은 비전의 지평에는 기나긴 5000년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세계 1급first class 위대한 코리아의 세기’를 만드는 것, 창조하는 것, 이 방향을 향해서 전진한다.
지난 21세기 초반, 두 번째 디케이드decade의 20년은 ‘웅비하는’ ‘한국의 세기’였고, 나머지 30년, 21세기 상반기 역시 ‘한국의 세기’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하여 2050년 21세기 후반부에는 한국의 세기를 거쳐, 세계는 ‘다소’ ‘‘한국화된 세기’인 ‘팍스 코라아나’를 꿈꾼다. 지금 우리는 ‘서구화된 세기’의 한복판에 살고 있고, 이웃 중공도 중화사상의 부활의 야망에 들떠있지만, 세계가 어디까지 인기없는 전체주의 중공의 침투를 허용할지는 미지수이다. 설사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하지만 코리아는 신생 매직 파이브로서 동북아, 동아시아, 아시아 전역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환영받고willkommen, 특히 지구상의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그들의 미래 번영과 민주주의의 꿈을 코리아에 투영하는 한국의 세기일 것이다.
의외에도 한국은 미션 파서블mission possible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21 코리아의 세기를 여는 하나의 열쇠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인데, 한국은 종교적 관용이라는 서구에서는 귀한 문화적 관용이 살아 숨쉬고, 독재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라키에서는 귀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이다. 일례로 동북아의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세계 1등 중화몽을 꾸며, 독일의 괴테 문화원을 본따서 공자학원 확장을 꾀하며, 세계의 마음을 사겠다고 덤비지만, 공산체제인데다가 14억 전인구의 안면인식을 통해서 조지 오엘의 빅브라더 또한 유발 하라리의 감시체계로 작동하는 디지털 전체주의 중공은 도대체 매력무이다, 중공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공정한 국제룰을 지키지 않아서 세계의 위화감 조성에 앞서고, 한국이 나라 크기가 더 작다고 우리 서해 앞바다와 카디즈에 중공의 전투기와 항모가 ‘제 나라 앞바다’인냥 자주 침범한다, 일본은 전범 과거를 결코 반성하지 않아서 아시아인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 일의 과거사적 퇴행적 오만이 없다, 한국은 ‘중화사상’을 자청 스스로 ‘나만 중심’이고 ‘나머지는 모두 야만인 오랑캐’라며 아시아 제국諸國들을 얕보지 않으며, 일본처럼 타국을 침략하여 타민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제국주의적 과거가 없다. 뿐만아니라 한국에서는 기독교, 유교, 불교, 도교등 모든 종교들이 수백년을 화기애애 공존한다. 한국보다 더 모범적인 관용 국가는 없다. Toleranz는 새로이 배울 것도 없이 한국의 전통 문화인거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은 하드파워 국력과 민주주의, 문화적 관용이라는 소프트 파워를 종합하여 평가할 때, ‘한국의 세기’에 즈음하여 충분 파워power는 되지 못하나 필요파워 소유 정도는 된다. 7세기 신라시대에 불교의 도래 이후 지금까지 약 1500여년을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위대한 문화적 관용의 나라였던 한국, 그 후예인 ‘현대 한국’이, 늦게사 ‘한국이 아시아 문명의 주역’이라며 자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은 아시아 문명의 모든 위대한 문명과 가치의 상속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동아시아 문명의 전파자로서 활약해도 된다, 이때 아시아 문명은 한국의 홍익사상을 포괄 유교, 도교이고, 이는 인류보편의 인권과 자유, 평등사상과 정합하며 화목한다. 한국 문화가 서양에서는 소중화로서 마치 중국 문화의 하위개념처럼 취급받았는데, 한국은 이제 주체적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고 역사 지식을 함양하여 한국이 동양 문명의 모든 위대한 원칙의 상속자이며 계승자이며, 21세기 들어 특히 자유와 관용에 대한 사랑, 평등에 대한 느낌, 기회, 자립과 독립의 전통적인 인류보편의 가치를 체화, 세계에 전파하는 국가가 되자. 한국의 세기에 한국은 아시아 문명의 계승자가 된다.
사실 한국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불리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고, 특히 국민의 지성과 교양이 부족한데, 이 점을 자각하여, 국민들이 ‘좋은’ 독서와 사색으로 교양을 쌓아서, 세상의 모든 테마에 말하자면 근년에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에코, 지구적 사회적 연대등이 이슈인데, 한국도 그 토론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프트파워의 존재론은 종속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연성권력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소프트파워는 하드파워의 시녀로서, 군사, 경제, 과학기술의 하드파워의 빛에 반사되어 존재하는 종속적 운명이라는 뜻이다. 필자가 말하는 문화적 관용 국가라고 해서 ‘한국의 세기’는 오지 않는다. ‘한국의 세기’는 하드파워가 먼저 왔기에 소프트파워 상승이 가능했던 것, 이제 부터는 두 파워요소가 병렬하는 스마트파워의 한국이 바람직 하다.'코리언 패기korean thimos는 한국인의 특징이다, 한국의 호연지기'가 상상하는, 구상하는 '한국의 세기'란 ‘세계 속의 일급 Erste Klasse의 회원’이며, 이것은 현대 한국인의 자존심이며 위신이며 프리빌레크Privileg, 프레스티지prestige. 역경을 극복한 한국인은 그 지위를 마음으로 향유하며 겸손할 자격을 갖추었다.
‘한국의 세기’엔 한국인은 지역적·세계적 역할을 자임, 한국의 이념인 홍익인간과 서구적 보편적 가치인 자유, 정의와 융합하여, 세상에 나아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에 실천하며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데 앞장서는 나라이다. 좋은 코리언good korean이 코리아의 프런티어 정신kprean frontier 으로 무장한 그 나라는 온 세계를 포옹하며 포옹 받으며 스스로가 좋은 한국인임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세기는 매직 파이브와 통한다. ‘매직 (FIVE) 5’는 현대한국의 궁극Ultimatum이다. 대한민국의 運命數magic five이다. ‘매직 (FIVE) 5는 한국의 운명‘MANIFEST DESTINY이며 ’팍스 코리아나‘의 요약이다. ‘동북아 5강’은 현금의 대한민국의 위치이니, 미래의 nmk에게 ‘글로벌 5강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다’. 2차 대전시 처칠이 히틀러를 맞서 대영제국의 존망이 바람 앞의 등불이었을 때, 한 말이 있다, ‘우리에게 승리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동북아에는 이제 그 옛날의 ‘새우’는 어제의 눈雪 gestern schnee이다, 대한민국의 영지領地 동북아에는 5마리 ‘고래들만’ 우글거리는데, 그중에서 덩치는 좀 작지만 가장 영민하고 강력한 (돌)고래인 대한민국이 존재의 승기勝旗를 휘날린다, 그러므로 21세기 한국에게도 ’승리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라는 다짐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정신과 영혼으로서 가슴에 아로 새겨져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나간 약 70여년간 ‘근면함’을 무기로써 ‘사뿐하게 선진국 클럽 3050에 진입했다, 앞으로 30년 안에 늦어도 2050년 까지는 한국인의 ultimate intelligence와 ultimate 노력을 쏟아서. 기적의 ’매직 파이브‘를 달성하고, 연후에는 유지시켜야 한다. 5는 한민족의 북극성이다. 진취적인 현대 한국에게 다른 후순위는 없다, 3 혹은 4위로서 앞설 수는 있어도 6,7로 물러설 수는 없다. ’21 코리언 세기‘는 이 ’매직 파이브‘ 북극성을 향하여 전진하는 가운데, 어느덧 2050년 경 도달해 있을 것이다.
3. 팍스 코리아나, ‘팍스 코리아나’=한화론(韓華論, 韓和론)’, ‘좋은 한국(인)’과 함께 세계는 화목하고 번영한다
팍스 코리아나라니, 환청이 아닐까. 한국인의 재능과 꿈과 진취를 무한 촉구하며 동시에 무한 활약하는 ‘팍스 코리아나’라는 슬로건은, 5천년 한국사에서 들어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음소의 발음이다. 이 단어를 듣는 모든 한국인들은 흠칫 놀라고 가슴은 멈칫 고동칠 것이다. 이 유일 새로운 단어에는 컴컴한 동굴 속에서 요술에 걸려 5000년 잠자던 웅녀와 호랑이가 잠을 깨고서 막 떠오르는 햇살을 향해 동굴을 빠져 나오는 눈부신 기상이 어리고 오래 기다린 者만의 영험이 배어 있는 듯, 이 단어에는 신성한 기운이 어려있다. 천지개벽의 천둥소리가 제주도 한라산에서부터 백두산 백록담에 이르도록 삼천리 금수강산에 메아리echo가 울리는 듯하다, 에밀레 먼 종소리처럼 산천을 울리고 그 여운은 세계를 향하여 동심원으로 퍼지는 듯하다, 잠자던 동굴과 산림을 뚫고 나온 호랑이와 웅녀의 포효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팍스 코리아나’는 이토록 초현실적으로 신화처럼 들린다.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는 현대 한국인이 도달할 궁극의 역사적 단계이다. 시간적으로 코리아의 세기 이후에 혹은 병립하여 전개될 한국인의 재능이 최고의 단계에 이르는 한국인 최고의 번영기이며 만개期이다, 이 ‘팍스 코리아’는 그러나 지지않는 꽃이며, 영구불멸이며 최소한 순환적 영원회귀이다. 2050년경 도달 완료했을 이 단계에 우리의 국력은 글로벌 5위에 이를 것이고, 세계 평화의 주도적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팍스 코리아나의 한국인의 물리적, 정신적 역량이 꽃피어, 현대 한국인은 국내적으로 스스로 빛나던 개인 코리아나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인류의 善, 본보기’일 것이다. 코리아의 발전단계(고난기(5천년)→부국강병 성장기(1960~1990년대)→한국의 세기(2000년대 상반기, 세계사에 참여, G7)→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지나온 ‘팍스 코리아나’는 무엇이며 어떤 코리아일까.
Pax Koreana는 좋은 코리언good korean의 세기이며 ‘영광의 대한민국이 창조되는 시기이다. ‘영광의 대한민국이란 5000년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관념이다. 좋은 코리언good korean들은 세계와 화목하며 하모니 인류, 평화인류의 세계인 이름하여 코리언과 함께 ’평화 인류 건설‘기가 도래한다. 팍스 코리아나의 위대한 영광은 두가지 전제를 통해서 실행된다, 하나는 정신무장, 다른 하나는 하드파워의 보유이다, 전자를 위해, 코리언은 1)희생과 봉사의 K(코리언) 프런티어 정신을 갖춘 ’굿 코리언‘이다 후자는 팍스 코리아나를 전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를 발판으로 코리언은 소프트파워를 전세계에서 펼치게 된다.
팍스 코리아나는 좋은 코리언의 힘의 표상이다. ‘더 이상 어글리 코리언은 존재치 않는다’. ‘좋은 한국인’의 힘과 노력으로 ‘지구인과 함께’ 팍스 코리아나(한화론韓華論, 韓和론), 홍익인간korean humanism은 자유, 인권 강화에 이바지하여 세계를 인본주의적으로 자연과 융화하며, 보다 평화롭고 보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시도하는 시대이다. 팍스 코리아나는 좋은 한국인들이 있어 세계는 더 화목하고 더 번영하는 시대의 도래를 위해 노력한다. 그때에는 몽골인과 일본인과 중국인을 두려워하는 黃禍論이 아니라 좋은 코리안의 한화론(韓華論, 韓和론)이 화두가 될 것이다. 인류의 평화세계 건설에 이바지하는 일은 한국의 영광이 된다, 대한민국의 영광이 창조된다.
팍스pax라는 기호에는 제국의 아우라가 넘실댄다. 팍스(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는데, 로마 제국이 피정복 민족들을 통치하던 것을 가리켜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한다, 로마제국을 동경하는 서구 제국들 중에. 대영제국은 19세기 식민지 통치를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라고 하고, 오늘날 미국의 지배에 의해 세계의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이른다, 근래 중국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고대 중. 언술은 정치의 기본이니. 강대국은 "팍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강대국 정치의 폭력성을 감추며, 진짜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처럼 위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팍스 코리아나는 이전의 ‘팍스 로마나’ 혹은 팍스 브리태니카 같은 세계지배의 이데올로기를 뜻하지 않는다, 그 반대이다, 팍스 코리아나는 세계 평화, 번영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팍스 코리아나는 pax를 정식正式으로 정의한다. 그야말로 pax에게 평화의 진정한 이름을 선물하게 된다. Pax의 본래本來 의미인 평화의 개념을 구현하는 ‘팍스 코리아나’=한화론(韓華論, 韓和론)’, 한국(인)과 함께, 세계는 화목하고 번영하려는 의지이다. 나는 이 세계에 ‘좋은 코리언 good korean이 있어 세계는 좋은 세계good world)(보다 행복하고 보다 평화로운, 보다 인정있는 공동체적인)다 ’를 열어 가기를 소망한다. 한국은 앞으로 아무리 최대의 역량을 펼친다고 해도, 물리적 정신적 힘에서 역사 속 강대국들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인구, 영토, 식민지등을 한국은 가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힘의 한계 내에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는 할 수 있다. 한국의 군사, 경제의 힘에 소프트 파워를 더하여, 루스의 좋은 사마리아인의 마음, 1960년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뉴프런티어 정신을 계승한 코리언 프런티어 정신을 가슴에 품고서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좋은 코리언의 세기’ ‘팍스 코리아나’를 만들어 간다,
팍스 코리이나의 주체인 good korean이란 누구인가? 모든 한국인이다. 코리언 프런티어는 개인적으로 좋은good 자아를 형성해 가는 길이며, 사회적으로는 좋은 사회를 세계적으로는 지구상에 ‘좋은 한국인들이 팍스 코리아나(한화론)를 실현하려는 홍익인간 휴머니즘 정신이다. 이제 ’좋은‘ 현대 한국인은 모두가 ’세계 속의 한국인 일원‘이 되어, 한국만의 당면한 문제를 넘어서, 다른 선진국들과 ’함께‘ 세계의 여러 이슈들을 담당하며 해결하려 노력하며, 21세기 새로이 ‘코리언 프런티어 정신’을 가슴에 품는다. 코리언 프런티어 징신은 현대한국을 만들었던 주요한 동력이며, 한국민에게 인류애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념이다. 코리언 티모스Thimos와 호연지기를 북돋우고, 시민들은-현대 한국인: 교양 시민, 교양 한국인, 교양인〈역사의 종말> 속 ‘ 최후의 인간’이 아닌 ‘최초의 인간’ ‘최초의 코리언’이 되어 인권의 확산이라는 범세계주의적 이상을 펼치게 된다.
good world란 자유, 평화, 번영, 행복, ‘인정스런’ 따뜻한 세상이다. 고래의 한국인의 이념은 홍익인간이고, 이것은 오늘날 세계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휴머니즘에 부합하므로, 한국의 이념은 한국의 이해관계는 전 인류, 그리고 도덕 법칙의 이해관계와 동일시 될 수 있다. 한국에게 나머지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은 충분치 않지만, 한국인의 이상과 열정과 근면, 풍부한 인정(선한 마음)은 한국인만의 덕성을 체현하여 좋은 한국인은 지구 어디에서나 그리고 우주에서까지 환영받는 사람들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좋은 코리언 good korean이 있어 세계는 좋은 세계good world로서 보다 행복하고 보다 평화로운, 보다 인정있는공동체가 된다’,
Pax Koreana는 좋은 코리언good korean의 세기이며 ‘영광의 대한민국’이 창조 (5000년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관념)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팍스 코리아나는 쾌락 아닌 봉사와 도전을 요한다. 그러므로 이 pax 코리아나 ‘한화론’은 ‘코리안 프런티어’는 숲의 풋풋함과 순수함이다. 1960년대 韓 대학생들은 농촌 봉사활동을 하였는데, 그 일환과 비슷하게, 봉사활동의 무대가 이제는 우리의 농촌이 아니라, 그 옛날 한국처럼 더 후진 나라들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 7월 대통령 후보 지명 연설에서 ‘New Frontier’ 개념을 역설하였다.
‘오늘날 모든 지평선은 개척되었다. 미국에는 이제 프런티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뉴프런티어에 직면해 있습니다. 1960년대의 프런티어, 미지의 기회와 길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희망과 위험을 안고있는 프런티어-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한 프런티어는 일련의 약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도전입니다. 그것은 제가 국민 여러분의 무엇인가를 드릴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바랄 것임을 약속합니다. -그것은 더 나은 안전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역속합니다.-이 프런티어 속에는 아직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과학이나 우주분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평화와 전쟁의 문제, 아직 정복되지 않은 무지와 편견의 골. 아직 해답이 없는 빈곤과 과잉의 문제가 펼쳐져 있습니다(시루야 가나이2007)’.
캐네디의 뉴프런티어 정신은 한국인에게 세계로 나아가는 희생과 봉사의 의미를 일깨운다. 세계에 대한 미국민의 희생정신을 호소하는 '프런티어(frontier)'는 프랑스어로 '경계선'을 의미하는 'frontière(프롱티에르), 영어로는 ‘개척자’라는 뜻이다. 이 프런티어는 서부시대의 <개척 정신> 이후 미국의 정체성으로까지 간주되는데.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구호는 새로운 개척, 미국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새로운 영역인 ‘달’로 우주로 뻗어나갈 것을 촉구하려는 의도이다.
원래 ‘경계를 넘는 개척정신’을 뚯하는 ‘프론티어'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정신에 면면히 이어져 새로이 21세기에도 계승하고 있다. 세계 IT의 중심이 되는 미국 실리콘밸리등 서부가 인텔, 애플 같은 IT혁명기업과 스타트업의 중심지이자, 최근에는 택사스에 까지 벤처기업가들이 미국적 창조 신화의 발원지가 된 것도 이같은 프론티어 정신과 무관치 않다. 현대적 프런티어는 처음에는 경제였지만 청바지나, 호칭에 따른 신분, 학벌, 계층을 없애는 문화운동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캐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는 새로운 개척, 미국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더 새로운 영역인 ‘달’로 우주로 뻗어나가자는 뜻이니 오늘날 패기 도전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적절한 호소력이다. 필자가 권유하는 ‘코리언 프론티어(개척자)’의 한국적 의미는 개방과 자유, 기회의 함축적 개념이며 한국인의의 ‘세계사 팽창’은 단순한 지역적 팽창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수립, 발산, 전파하는 과정이 된다.
코리언 프런티어 개척의 특징은 민간인 주도의 개척, 자유, 인권, 휴머니즘(홍익인간의 이념)에 기반한다. 이 봉사 활동은 주체와 대상이 상호 윈윈하여 객체의 발전과 번영이라는 초기 목적은, 노력하는 가운데 좋은 한국인은 어느새 한국적 정서와 정신의 고양에도 기여하는 애국자가 된다. 한국인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도전과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구한국은 정태적이었으되, ‘현대 한국인’은 동태적인 나라다. 대한민국은 영구히 만들어지고 있는 나라werdendes Korea가 된다. 니체의 무한 새로이 생성되는 새로운 신선한 나라이다.
그리하여 풋풋한 순수한 ‘코리언 프론티어들’은 ‘세상을 개척’하면서, ‘팍스 코리아나’의 주역들이며 진정한 현대 코리언들인 것이다. 캐네디 대통령은 정치가답지 않게 눈치없이 ‘미국인의 분발’을 취임사로 골랐다, 나라가 무엇을 ‘주겠다’가 아닌 ‘인기없는’ ‘꼰대 잔소리’였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 전 세계의 인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
1961년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국가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미국 건국 초의 개척정신과도 같은 국민의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미국의 건국정신, 개척자정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회복지의 구현, 인종차별 폐지,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였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긍정적인 가치추구를 위한 젊음의 도전을 촉구하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정신, 당시 심각한 무사인일에 빠진 미국의 젊은이들과 국민에게, 케네디는 ‘선심정책’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국가와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능동적으로 찾고 실행할 것을 독려한다, 미국 국민들에게 젊음들에게 국가 의존심보다 자발적 희생과 분발을 촉구하고, 국가와 세계를 위한 사명감을 일깨우고 봉사를 촉구하는 연설이다.
이후 정신적, 문화적으로 방황하던 청년들은 '뉴 프런티어' 정신에 따라서, 마음을 다잡고, 수천, 수만의 미국 젊은이들과 미국인들은 케네디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이 되어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 중남미 등 77개국에서 땀으로 실천했다. 60년대 그 젊음들은 전 세계에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프런티어 정신을 구현하였다. 그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 충남에서 1975년 봉사단원 활동 이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냈던 스티븐스는 스스로 ‘심은경’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졌고, 캐네디의 프론티어정신으로 충만하여 당시 최빈곤국 한국에서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이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며 감개무량해 하였다.
21세기 3번째 디케이드decade 시작점인 지금 필자는 정확히 60년전의 케네디 대통령처럼 늦어도 30여년 후인 21세기 후반부부터는 韓국민에게 국가와 세계를 위한 소명의식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한국인은 세계에 대한 강렬한 소명의식을 누구로부터 부여받이 적은 없다, 우리 헌법에 “인류공영에 이바지 한다”는 글구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레토릭’이었든지, 국민의 가슴을 건드린 적도 적신 적도 없고, 그 어떤 리더로부터 한번도 강조된 적이 없다. 사실 지나간 역사 속 한국의 처지가 ‘내 앞가림’마저도 바쁘고 힘겨웠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한국인은 다르다, 새롭다. 코리아는 어엿한 ‘세계 속의 코리언’으로 등장하였다. 2019년에 정치적, 경제적 선진을 의미하는 ‘세계 7등’을 시사하는 3050 회원이 되었고, ‘한국의 세기’의 주인공들이며 팍스 코리아나를 지향하는 ‘전진하는 현대 한국인’은 길고 긴 ‘후배지hinterland’에서 일어나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하여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이름하여 ‘코리언 프런티어korean frontier’라는 새로운 싱그런 풋풋한 청명한 정신무장으로 말이다. 이 ‘프런티어 코리언’은 ‘나라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건가요?’라며 두 눈 부릅뜨고 ‘국가 의존’을 외치기 보다는, 국민 스스로가 국가와 세계와 지구를 위한 소명의식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韓청년들의 자신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에 대해 이런 다짐은 어떨까, ‘나는 조국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겠다. 내가 ‘함께’ 인류의 자유와 공영, 지구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묻겠다.” 라고, 이런 자립적인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 때에, 오히려 든든해진 나라는 물심양면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비축될 수 있을 것이고,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다’.
진취적이며 자립적인 미래지향적인 젊음을 응원한다. 국민들의 지나친 국가 의존성은 자아의 성공도, 나라의 번영도 담보하지 못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나태한 사회를 부른다. 자발적인 시민 혹은 개인들이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나아가 세계의 일원으로서 지구공동체에 기여하고 봉사하려는 마음이 바람직하다. 코리언 모두가 예외 없이 우리와 지역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책임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고민해야 한다.
코리언 프런티어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열쇠이다. 그래서 필자는 ‘코리언 프런티어’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일정도 제시하지 않는다. 코리언 프런티어의 성공의 확실성을 단언하지도 않겠다. 캐네디의 말처럼, ‘코리언 프런티어’는 ‘100일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1000일 안에도, 우리의 인생 동안에도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다만 케네디처럼 소망한다, "(우리의 국가와 우리의 세계를 위해서) 일단 시작은 해 봅시다".
한민족 5000년 역사상 ‘최초로’, ‘결코 경험한 적 없는’ ‘한국의 세기’를 열며, ‘매직 5 코리아’를 건설하자며 전진하는 현대 코리아의 현대 한국인들에게 ‘팍스 코리아나 한화론(韓華論, 韓和론)’를 주창하면서, 어떤 ‘즐거움’ 아닌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좋은 한국인의 희생과 봉사 정신을 강조하니, 韓 독자는 어쩐지 박탈감같은 것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팍스 코리아나’는 민주주의, 경제, 군사력등 하드파워를 성공시킨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가 로서, ‘자랑스러움 프라이드pride’를 넘는 형이상학적 관념인 ‘영광의 대한민국’도 꿈꾸어 봄 직 하다. 코리언이 “인류의 재능있는 공복, 선한 사마리아의 사람, 휴머니즘, 자유와 정의 이상 실현에 노력하는 한국은 현대적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세계사의 주도 맴버로서 활약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영광은 희생과 도전에서 싹트는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 ‘한국의 세기’는 팍스 코리아나는 구호 아닌 ‘감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역사의 종언>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모든 우등한 인간은 영광을 추구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영광은 희생과 도전을 요한다. 과거 영광은 대개는 ‘전쟁 승리의 월계관’이었으되, 현대의 영광은 봉사라는 재능과 시간과 에너지의 희생이 만들어 내는 성배인 것 같다, 노벨상의 수상자들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찬란한‘ 영광의 감정을 일으키는 근원은 수상자들이 오랜 시간 ’인류의 삶의 발전‘을 위한 어떤 자신의 일에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봉사와 희생 ’바침‘의 덕분일 것이다, 미래에 한민족이 ’영광의 대한민국‘을 위해 전쟁을 할 필요도, 목숨을 바칠 각오도 필요 없다. 세상에 나아가 ’어느 순간‘ ’즐거이 기꺼이‘ 붕사활동을 시작하면, 자신에게도 나라에게도, 지구 공동체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good 지구인 코리언’이 되고. 영광의 대한민국은 창조될 것이다.
한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조정과 중재 역할에 충실한 나라로서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국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외교적 강점을 적극 활용해 한국 외교의 지평을 개인만이 아닌 나라의 여러 기관들과 기구들을 통해서, 국제기구등으로 확대해야 한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된 이후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수많은 꿈나무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현대 한국인’은 PAX 코리아나의 맴버들이다.
침략 억압의 제국주의의 과거가 없어 세계인으로부터 애초의 적대감이나 경계심은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 정치, 번영하는 경제, 군사, 기술에서 밀리지 않는 ‘힘’이라는 배경을 가지게 되었다, 경제적, 문화적, 코리언 프론티어들이 세계 각지에서 자신들의 뜻을 펼칠 때, 한국은 세계 지배 아닌 세계와 친구가 목적이므로 反韓의 적대감은 미약할 것이다. 지구적 문화적 헤게모니에서 중요한 관건은 매력의 설득력과 동의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인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확립하려는 한국인의 세계 무대 등장에 세계인들은 거부보다는 ‘동의’할 것이기에 한국인의 꿈과 이상, 재능을 펼칠 수 있겠다. 팍스 코리아나는 한국인이 세계와 친구되려는 기획이다. 이런 의미에서 팍스 코리아나의 청년들에게 사회 각 분야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발전을 통해 평화를 실현하는 새 패러다임과 글로벌 리더쉽을 지닌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만일 한국이 2050년깨 ‘매직 5’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불평해야 한다, 1941년의 미국인 루스처럼
“우리 미국인들은 불행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관련하여 우리 자신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고요, 우리는 불만스럽고 우울하며 냉담하지요 We Americsns is unhappy, We are not happy about America, We are not happy about America in relation to America, We are nervous- or gloomy-or apathetic”.
4. 리더십
1962년 “우리는 10년 안에 달에 착륙하고 그밖의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하려는 겁니다. 이번 목표가 우리가 보유한 최상의 기술과 에너지의 수준을 나타낼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닉슨은 케네디의 이 거대한 ‘달나라 깃발 꽂기’ 기획을 망상이라며 크게 실소했지만 자신의 재임기인 1969년 암스트롱의 달 착륙시에 닉슨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기뻐서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존 F, 케네디의 ‘달 쏘아 올리는 유인달착륙사업moon shot’은 결국 1960년대에 이루어졌고, 그 우주 계획은 오늘날 미국의 최강 최첨단 과학기술을 부산물로서 가져다 주었고, 또 지구 아닌 다른 행성에 ‘미국의 영토’를 규정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케네디는 당시 “그 일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하려는 겁니다”라며 도전의욕을 불태웠다. 50년대초 그리고 60년대 초 케네디의 유인달착륙사업 비전은 근년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우주군을 창설하며 우주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인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당시 마키아벨리의 조국인 도시국가인 피렌체가 주변 강국에 의한 계속된 침략과 전쟁을 개탄하며, 강력한 君主의 출현을 기대하며 쓴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4개의 군주의 덕목을 지적, 설명한다, 마키아벨리는 홉스나 로크와 달리 정치를 ‘인위적 계약으로 만든 조직’으로 보기보다는 군주가 이끄는 리더십으로 보았던 <군주론>에서 군주는 ‘정치란 질서를 잡아주며 적을 물리쳐 국가를 보전하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국가이성에 집착하여 선도 도덕도 외면가능한 냉혹한 지도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국가를 장악하고 개혁하며 안전하게 지키려는 4대 덕목은 비르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와 프루덴차prudenzia, 네체시타necessità이고 더불어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을 갖추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인민으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정치하기가 편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시켜 강력한 힘과 법적 정당성에 기초해서 국가를 통치하려는 근대적 의미의 입헌 군주상을 세워, 마키아벨리는 근대적 정치사상의 효시가 된다.
마키아벨리가 그의 ‘군주’에게 부여한 핵심 당위는 라틴어 virtus에서 유래한 비르투이다. virtù는 권력/ 힘, 역량, 능력, 기술, 활력, 힘, 기백, 용기, 용감함등 여러 가지 ‘남성스러움’을 뜻하는데, 군주가 도덕성 보다는 능동적인 힘인 비르투에 기초해 정치를 할 때에 국가는 변덕스런 여성 포르투나의 ‘운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포르투나는 글자 그대로 ‘운’을 관장하는 여신인데, 평소에는 ‘유용한 강물’을 주지만 ‘수 틀리면’ 홍수같은 재앙을 부르므로, 변덕 포르투나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군주는 제방을 쌓는 등 유능한 유비무환의 비르투를 잘 구사하여야 한다. ‘힘’을 뜻하는 비르투는 외세의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보존하는 자력구제의 원천이므로. 국가의 독립 유지를 위해서도, 운(포르트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비르투가 중요하다. 마키아벨리의 이런 정치와 종교·도덕의 분리 주장과 권력virtu을 갖춘 지도자의 강조는, 마키아벨리를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투키디데스와 더불어 사상적 원조의 반열에 오른다.
네체시타necessità라는 개념은 ‘무엇보다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다만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마키아벨리즘을 구성하는 핵심용어다, 갈등의 다이내믹스가 요동치는 전선(戰線)으로서, 마키아벨리는 네체시타란 개념을 통해 한편으로는 국가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반도덕적 정치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하면서도 다른 한편 네체시타 없이 추진되는 국가이익의 부도덕성에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갈상돈). 네체시타는 또한 ‘불가피성’이란 뜻을 거지고 있는데, ‘시대가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어떤 것’으로도 정의된다. 네체시타necessità는 그러므로 시대에 적합한 것, 곧 시대적 정합성이라고 하겠다. 헤겔의 역사철학적 용어로는 ‘시대정신’이며 역사의 필연성이다. 당대의 역사가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네체시타는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지도자는 승리케 하고, 그 요구에 미달하는 지도자는 패배케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아규멘트argument이다. 지도자는 그러므로 비르투에 더해 네체시타를 간파하는 혜안으로서 실천이성인 prudenzia로서 시대의 과업을 처리해야 하고, 그때 행운의 포르투나가 미소 짓는‘군주’이면 바람직하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며 군주가 내재하는 실천이성의 여러 덕목들은 정태성이 아니라 변증법적 상호 관계하며, 이들 덕목들은 동태적 운동을 통해 정반합의 실천적 이성prudenzia의 영역, 즉 정치적 행위가 된다.
정치를 세속적인것으로 간주한 마키아벨리는 정치행위의 평가 기준을 역사적 실효성(historische Wirksamkeit, historical efficacy)에 두었다. 정치행위의 옳고 그름 또는 좋음과 나쁨의 평가 기준은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해졌는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두었다. 즉 ‘國家理性’(Ragion di Stato, Raison d'etat') 국익 또는 국가의 목적이 국가적 행위의 판단 기준이 된다. 20세기 초 Max Weber는 열정Leidenschaft·책임감Verantwortlichkeit·통찰력Augenmaß을 정치가의 자질로서 제시하면서, 칸트의 ‘지상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신념윤리Gesinnungsethik가 아닌, 결과의 윤리Erfolgsethik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paragraph의 서두에서 소개한 미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유인달착륙사업moon shot’이 ‘쉽지 않으며’, “어렵기에 한다”는 미국인들의 도전의욕이 돋보이지만, 그 우주 사업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고 그리고 미래형의 거대한 미국의 비전이었다, 훌륭한 리더는 조직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위대한 지도자는, 케네디의 ’뉴프런티어‘와 ’유인 달탐사사업‘의 경우처럼, 현재의 문제해결을 간구하면서도 그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 비전도 제시한다. 케네디의 리더십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제시하는 군주의 4대 덕목인 비르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와 프루덴치아prudenzia, 네체시타necessità의 요소 모두를 반영하는 하나의 실례로 보인다.
국가 지도자는 시간과 국가라는 영토적 공간, 문화에 제약받는 역사적 존재이기에, 시대마다 시대가 요구하는 필수 과업 처리는 리더의 임무이며 의무가 된다, 국가 지도자에게 국가와 국민의 안보, 재산, 자유, 행복권, 시민권의 보장은 기본이다. 한국의 지도자들도 나름 시대정신을 명확히 인지하고 실제 이를 실행하였다. 인민의 삶의 가치와 생활 방식을 결정짓는 자유민주주의라는 政體와, 바람 앞의 등잔불 숙명인 한반도의 안보를 담보한 한미동맹 체결과 全한국인에게 경제적 ‘평등’과 그로인한 ‘자유’를 부여한 농지개혁, 민주적 교육제도 도입과 활성화를 통한(물론 미군정의 도움이 있었긴 했다) 자연스런 문맹타파의 한민족 계몽은 오늘날 문맹없는 전국민 국민 고등교육 시대를 열은 이승만 대통령, 한민족의 5천년 굴레인 빈곤타파, 산업 근대화와 미래형 중공업 육성의 박정희의 국가자본주의는 오늘날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기초를 건설했으니, (비록 크나큰 훔결이 있긴 하지만) 두 지도자분은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군주의 4가지 덕목’을 두루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막스 베버가 정치가의 자질로써 제시한 열정, 책임감, 통찰력에 견주어 ‘정치의 결과론’에 견주어 보아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군주론’은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아도 되겠다’.
올해 2021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현정권으로서는 당연히 코로나 극복이며, 통합이며, 뉴딜 성공이다. 그리고 경제 번영이다. 무엇보다도 금년 다보스의 어젠다인 ‘신뢰재건’도 있다. 이것은 당면 시대정신이고,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을 pqx koreana 하나로 이끌 코리언 프론티어의 미래 ‘21 코리아의 세기’를 열며 승승장구해야 할 코리아의 중기적 시대정신도 수치로서 선명하다, 2025년 GNI 4만불, 강고한 동북아 5강의 지위 굳히기. 지속되는 ‘한국의 세기’ 속에서 2050까지 ‘글로벌 5강’의 국력증강,강대국의 하드파워의 외형을 완성할 지도자는 스스로 의지로 충만, 비전과 목적을 분명히 인식할 것이도 그런 연후에 목적 달성을 위한 구체적 전술과 전략을 짜고 집중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상황에 밀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금년 2021년을 `PK(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 건설을 위한 중대한 해(A Crucial Year to Build Pax Koreana)`로 규정한다. 30여년 후 2050년경 아니면 그전에 아니면 그 후에 PK는 반드시 도래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리더는 희망을 이루려는 철저한 준비자인 ‘승리의 설계자 Engineers of Victory’이다.
당대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눈높이’ 리더십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약하는 21세기 한국의 지도자와 현대 한국민의 시대정신은 한국의 세기를 실현하는 것, 매직 5를 실현하는 것, 청년들을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시켜 한국과 동아시아 동북아, 세계로 나아가서 그들의 꿈을 펄치게 독려하고 지지, 지원하는 것이다, 대전환의 시대이다. 지금 내리는 결단과 행보가 향후 수십 년간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른 변화속에 있다. 펜데믹 이후 올해 2021년 자율주행의 원년이라고 할 만큼 많은 기업들이 관련 제품을 내놓을 것이고,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등 신기술 분야는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다른 길로 인류를 이끌 수도 있다. 지금 세계는 기술 혁신으로 정치, 사회, 문화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패러다임 시프트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런 어지러운 혁신의 와중에서도, 분명한건 COVD 19 이후에 어떤 세상이 올지라도,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지라도, 흔들림없는 한국의 길은 자명하다, ‘매직 5’의 ‘절대정신’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예언했던 바,“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리라”.
p.s *본문의 두꺼운 활자는 필자의 의도 아님. 다음때문.
*이 글은 2021,2,15일 오후에 첫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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