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정 2. 窓 밖엔 함박눈 첫눈이 펄펄~~뜨거워서 좋아
여름날, 가을날, 그리고 봄비 내리면, 혹은 추운 겨울 창 밖에 흰눈이라도 펄펄 날리는 날이면, 세린은 창가 이름하여 래몬나무 숲 테라스에서 목욕을 할거야. 마치 그 옛날 태고적 숲속을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한아름 찾아서 지친 몸으로 처소로 돌아와 뜨거운 물통 속애 몸을 담그는 새벽의 여신인 듯, 사냥의 여신인 듯,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비밀의 레몬 숲에서 말이야…라고 작정했었지.
평소 채광이 좋으면서도, 고요와 그늘이 머물고, 항시 열어논 작은 창으론 부지런한 귀여운 바람이 들락거리는 곳, 피아노와 바이얼린이 주류인 음악이 자주 흐르는, 흰 코끼리 언덕 위 낡은 벨레뷰 호텔 구석진 곳에 자리한 저 욕조를 그런 용도로 준비했었지, 가끔 비스트로에서 한모금 음료를 마시며 저 아래 거리를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지.
암만 봐도 한국엔 서울엔 낭만이 없다. 수도首都의 도심에 벌써 오래 살면서 파악된 슬픈 형상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아무리 그럴 듯 하게 꾸미고 폼을 잡고 ‘척’을 도모해도, 삶과 생활은 진행될지언정, 인생의 순간 순간에 꼭 필요한 낭만성이 결여되어 각박하다. 전자만으로도 사실 韓生은 벅찰진대 낭만은 무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삶에서 낭만이 없다면 그 날뛰는 근면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일까….김세린이 전혀 의도치 않고서도 ‘창조’한 ‘현대 한국인’들이 진취, 도전 교양을 향상 중에도 일테면 최근들어 산책은 일상으로 변화하더니, 이젠 ‘어쨋건’에서 ‘일부러’ ‘연출하는’ ‘주말’로 만드는 도정이니, 실로 아름다운 세린의 한국 문화 혁명의 복된 결과이다.
며칠전 새벽 5시경 잠이 깨어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어머나 어둑한 창밖에는 강에는 눈이 솔솔 고요히 내리고 있었다. 서울, 첫눈, 강가에 가로등 불빛에 눈내리는 풍경이 아련하고, 정원의 청솔들도 바로 창 아래 일렬로 도열한 세콰이어들도, 까치들이 열심히 무성한 잎새속을 드나들며 명랑하게 놀더니, 4년여 전 어느날 그 나무 가지들이 공무원들에 의해 잘라지니, 그 속에 까치들이 정성들여 건설한 숨겨논 까치집 부동산 3채가 들통이 났고, 이후 한참동안 까치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최근에 돌아왔는데, 올해는 잎새들 다시 돋아나던 그 나무들에도 흰눈이 소복이 쌓이는 중이었다. 평소에도 새벽마다 아침마다 세린이 놀라워 마지않는 강의 풍경인데, 올해 첫눈이 풍성하게 ‘먼 데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내는 강의 설경에 아침의 여왕의 가슴은 절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잠꾸러기는 저 눈도 아침이면 끝나고 말겠지 싶었고, 다시 따스한 침대로 기어들어가 세상 모른 듯 혼곤히 잠에 빠졌다.
아침에 다시 바라본 창 박에는 그새 많은 눈이 쌓여있었고, 강물에는 즐거운 오리 떼들이 한가로이 내리는 눈이 좋아 놀고, 어디선가 검은 물새 떼들도 날아와 수제비를 놓으며 떼지어 까불며 첫눈을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아 물새 떼들,,,왕녀의 눈이 번쩍. 늘 수백마리씩 몰려 다니며 장난치던 물새 떼들이 이들은 주로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수백마리씩 무리를 지어 강 위를 가로 질러 동으로 또는 반대로 서으로 비행하거나 때로는 그저 강물 수면 위에서 한가로이 먹이를 잡아 먹으며 노는데, 근년 5년여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기후 탓인가 싶었는데…오늘 首都에 첫눈 내리니 고향처럼 새떼들이 한강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반가워라,
그러고 보니 11월도 막바지네. 올 가을이 다 가는 중이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딱 한번 뿐인 이 가을, 창 밖에 가을비 내라면 창 밖에 봄비가 여름엔 소낙비 내라면 겨울에 흰눈이 펄펄 날리면,,,무언가를 하기로 작정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아침에 욕조에서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궜다. 바깥에는 추운 바람이 불고 백설이 날리는데, 자신의 공간에서는 대조적으로 뜨거운 욕조는 이국의 깊은 숲속에 자리한 온천의 기분을 일으키며 목욕의 즐거움을 한층 끌어 올린다. 몸에 닿는 뜨거운 온수는 복된 감정을 일으킨다. 물의 포용과 온유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왕녀의 생과 살아온 생애가 유달리 남달리 얼마나 정직하고 충실하고 성실했던가를 자각한다. 그렇게 뜨거운 온수에 몸맘 흠뻑 젖었지만 배가 고파진 세린은 목욕을 끝내고, 창가에서 그새 함박눈으로 변한 서울〮첫눈 서정을 바라보며 금방 구운 뜨거운 빵과 뜨거운 커피랑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빵을 구우면서 마주친 남들에겐 잘 보이지 않게 창가 구석진 곳에서 고즈넉히 기다리며 졸리는 듯 왕녀를 바라보는 저 새하얀 깊숙한 욕조. 비 내리던 날 테라스에서 목욕하던 지난 여름의 추억…그리하여 창 밖에 펄펄 날리는 서울 첫눈 함박눈에 동정冬情을 이기지 못해, 날씬한 왕녀는 욕조 속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다시 몸을 담갔다. 물은 뜨거워 살금 들어오는 겨울 생바람은 곱고, 손 내밀어 손바닥에서 녹는 백설의 차거운 촉감을 언뜻 느끼며…주변 펜트하우스엔 불들이 켜지고…비누칠을 하다가 군살 하나 없는 나의 날씬함이 새삼 고마웠다, 늘어진 비게 하나 없는 체형이란 피트니스 한번 가본 적 없고 다이어트 노력한 적 없으니. 그런 건강한 아름다움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게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이더라는…몸이 잠긴 뜨거운 온수는 심신의 세포에 유복의 씨앗을 심는다. 몸과 맘은 山절로 水절로 부드럽고 유연하고 넉넉해져 살아갈 새로운 날들을 약속한다.

그렇게 뜨거운 물과 흠씬 친해지며, 눈내리면 다시 만나자며 복된 욕조를 나욌고, 손톱과 발톱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페디큐어를 조금 화려하게 칠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이쁜’ 세린 왕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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